충남도와 3조 원 투입해 대기오염물질 감축 협약
같은 시간, 태안발전소에선 고인 영결식 치러져
서부발전·한전KPS, 사고 이후 '책임 회피' 급급
노동자 벼랑으로 내모는 '죽음의 외주화' 고민 없어
충남도가 18일 도내 대기오염물질 다량 배출 사업장과 3조 1000억 원을 투입해 대기오염물질을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협약을 체결한 가운데 같은 시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도와 기업들이 ‘도민의 건강권’을 말하며 환경설비 투자를 약속하고 오염물질을 2029년까지 36%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자리엔 노동자의 생명권은 없었다.
특히 이날 협약식에서 빠진 것은 단지 고인에 대한 애도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전환의 흐름 속에서 전 세계가 강조하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고민 또한 없었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용·복지·안전망을 함께 구축하며 전환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자는 원칙이다. 즉, 탄소 감축이 노동자의 해고와 죽음을 동반해서는 안 되며, 산업 전환의 과정에서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우선적인 보호와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는 뜻이다
협약식에는 고인이 일했던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관계자를 비롯해 한국동서발전㈜ 당진발전본부, 한국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신보령발전본부·신서천발전본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환경 정의 논하면서 '노동 정의'는 외면
협약식에서는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탄소중립을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관련해 고용불안, 지역 경제 붕괴 우려 등이 언급됐지만 정작 산업 현장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성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
특히 이번 사고로 숨진 故김충현 씨의 휴대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발전소 폐쇄 일정을 기록해두며 일자리에 대한 고충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같은 발전소에서 2018년 숨진 故김용균 씨의 사고 이후 정부는 위험한 작업에 대해 ‘2인1조’ 규정을 권고했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폐쇄를 앞두고 인력이 감소 돼 노동자의 업무 가중이 심화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에 대한 책임 회피는 물론 산재 은폐 의혹까지 제기됐다.
故김충현 씨도 이 같은 어려움을 원청인 한전KPS 측 관계자에게 털어놓는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해당 대화에서 고인은 “좀 벅차다. 내게는 부담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도 관계자는 이날 협약식에서 “충남은 전국 최대의 화력발전소와 제철, 석유화학 단지 등에 위치하고 있다. 대기오염 배출으로 인해 대기 오염이 도민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대기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오염물질 줄인다면서 '죽음의 외주화'는 그대로
기업 대표로 발언에 나선 한국동서발전 김훈희 당진발전본부장은 “충남 지역에서도 저희 당진을 포함해서 석탄화력발전소가 당진, 보령, 태안 등에 위치해 있는데 그 사업장들이 배출하는 포지션들이 가장 커서 더 잘하라는 의미와 함께 좀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 김충현 씨가 몸담았던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는 사고 직후 불법파견이 만연한 다단계식 하청 구조와 안전관리 책임 회피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다. 발전사의 책임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며 협약식에 나선 발전사에 대해, 유가족과 동료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태안화력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17일만에 장례를 치루는데 모여서 고인에 대한 조사 한마디 없었다는 건 이들이 노동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며 “환경문제에 대해 논하려면 함께 살기 위한 노동자의 고용에 대해서도 반드시 논의돼야 했다.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 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또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말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죽지 않아도 될 노동자의 죽음에 사과하고 구조를 바꾸는 일. 오늘 협약식이 선언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위험의 외주화와 다단계 하청 구조부터 감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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