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태안발전소에서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
2018년 김용균 사망 이후 바뀐 게 없는 발전소 현장
"작업 오더 없었다"는 하청업체, 책임 회피 비판
무시된 '2인1조' 작업 원칙, 브레이크 작동 못했다

故김충현  씨의 빈소. 김다소미 기자. 유족의 동의를 얻어 고인의 실명과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공개합니다. 
故김충현  씨의 빈소. 김다소미 기자. 유족의 동의를 얻어 고인의 실명과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공개합니다. 

충남 태안석탄화력발전소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1975년생 故김충현 씨는 한국파워오엔엠 소속 정비 노동자다. 그는 2일 오후 2시 30분께 혼자 작업을 하던 중 범용선반 기계에 손이 말려들어가 사망했다.

김 씨는 2016년부터 발전소에서 일했다. 정비관련 기능장 자격증을 보유할 만큼 전문가였던 셈이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하나같이 “일을 무척 꼼꼼하고 깔끔하게 했다”, “작업확인서가 없으면 동료의 부탁에도 절대 작업을 하지 않던 사람”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김 씨는 한전KPS의 하청업체인 한국파워오엔엠 소속 노동자다. 한전KPS는 한국서부발전의 정비를 도급받은 공기업이다. 즉 공기업이 맡긴 업무가 두 번에 걸쳐 외주화돼 최종 작업자는 실질적 지시권, 보호 장치도 없이 ‘고립된 현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김 씨는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그를 발견한 건 방제센터 관계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2인 1조 작업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현장에는 안전감독자도 없었다.

김 씨가 작업하던 기계는 ‘NARA6015’ 범용선반이다. 기계는 위험한 상황일 경우 작업을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두 개다. 발로 조작할 수 있는 풋브레이크와 손으로 누를 수 있는 정지버튼이다.

사고 CCTV를 확인한 노조는 “옷과 손이 끼이면서 몸이 붕 뜬 상태였다. 두 개의 브레이크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인 1조 작업 원칙만 지켰다면 김 씨는 사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김 씨는 현재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 김 씨가 소속됐던 한국파워오엔엠 관계자들이 이날 장례식장에서 유족들과 만나려 시도했지만 유족의 거부해 이뤄지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죽음은 2018년 같은 발전소에서 발생한 故김용균(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씨의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그 역시 사고 당시 ‘혼자’일하고 있었다. 석탄을 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김충현 씨의 사망 원인은 선반 기계를 다루던 중 발생한 ‘기계 끼임’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위험의 외주화’, ‘인력 부족’, ‘관리 부실’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KPS 측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김 씨가 하던 작업은 “공식 작업 오더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수년 간 반복된 ‘사고 이후 책임 회피’의 전형적 형태다. 공공운수조노는 “김 씨가 작업하던 것은 발전설비에 사용될 부품을 절삭하던 과정이다. 오더 받지 않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6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故김용균씨도 어제 사망한 故김충현 씨도 모두 고용자의 회피 대상이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계기가 됐던 곳에선 모두 중대재해처벌법과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2022년 시행된 이 법은 故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법은 “실제 책임자에게 닿지 못하는 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故김충현 씨의 사례처럼, 원청은 책임을 하청에, 하청은 또다시 재하청에 넘기며 실질적인 처벌과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책임자는 흐릿해지고, 죽음은 반복됐다.

바뀌지 못한 사회적 구조의 결과


故김충현 씨의 사촌 형님 A씨는 “열심히 일하다 죽는 게 말이 되나. 왜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나. 보상만 해주면 끝나는 것인가. 제발 반복되지 않아야할 일이 또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왜 혼자 일하다 죽어야 하나”라며 말끌을 흐렸다. 고인의 어머니는 빈소에서 연신 아들의 영정사진을 쓰다듬고 있다.

노조는 “정비 인력에 대한 구조적 충원 없이 보여주기식 개선만 이어진 결과”라고 비판했다. 김용균 씨 사고 이후 안전 인력은 운전 구간에만 충원됐고, 정비 부문은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이 현장의 증언이다.

유족과 노동계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공공기관의 외주화 구조 전반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내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도 감독도 책임도 없이 현장에 보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현재 화력발전소 현장에는 인원이 줄어든 상태에서 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언더 티오’로 운영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작업자는 줄었지만 일은 줄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또 다른 ‘김충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시금 묻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본 뒤에야 시스템을 고칠 것인가. 보여주기식 규정 강화나 일회성 조사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위험한 작업은 원청이 직접 책임지고, 모든 공공 인프라 업무는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체계로 재편해야 한다.

한편 오후 1시께 유족과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 후보,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김 씨의 죽음을 둘러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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