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정비 노동자는 김충현씨가 유일
사고 현장 보존 않고 정리한 발전소
평소 가진 기술력으로 꾸준히 봉사활동

故김충현 씨가 작업 중 숨진 한국서부발전 정비동 앞에는 출입금지 종이가 붙어있다. 김다소미 기자. 
故김충현 씨가 작업 중 숨진 한국서부발전 정비동 앞에는 출입금지 종이가 붙어있다. 김다소미 기자.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故김충현 씨는 하청업체 한전KPS의 재하청 업체 한국파워오엔엠 소속의 유일한 정비 담당자 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정비 노동자는 김 씨 혼자 선임돼 일했다.

김 씨가 다루던 기계는 범용선반이다. 공작기계의 시초로 불리며 물체를 단단히 물린 채 회전시켜 가공하는 기계다. 공작기계는 각종 기계를 만드는 기계로 절삭, 소상가공 등으로 만들어 내는데 관련 지식은 물론 숙련된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다.

김 씨의 동료 A씨는 “보통 작업을 의뢰하면 작업을 의뢰한 사람이 (작업 과정에) 같이 있긴 하는데 거의 대부분 혼자 일했다. 2인1조도 인력부족을 이유로 사측이 들어주지 않았다. 인건비 때문일 것”이라며 “발전 공장에 애초 정비 노동자는 김 씨 혼자 선임됐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급하니까 오더 없이 기계를 돌리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서류에는 남지 않더라도 누군가 오더를 내렸으니 (김 씨가) 기계를 돌렸을 것”이라며 사측이 주장하는 ‘임의 작업중 사망’에 반박했다.

김 씨가 다뤘던 범용선반 기계 모습. 김다소미 기자. 
김 씨가 다뤘던 범용선반 기계 모습. 김다소미 기자. 

2016년부터 발전소에서 일했던 그는 같은 현장에서 계속 일해왔지만 소속 하청업체는 수시로 변경됐다.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을 준 한전KPS와 계약하는 하청업체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고인이 마지막에 몸담았던 회사는 한국파워오엔엠이다.

김 씨의 동료 B씨는 “하청업체 인원이 소규모여도 공기업인 한전KPS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청의 하청을 꼬리에 물고 일했다. 정부는 정규직화를 권고했지만 이뤄진건 없다. 하청업체가 계속 쪼개지니 당연히 사고가 나면 책임을 회피하기 좋은 구조가 된다”고 지적했다.

유족과 동료들이 구성한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김 씨가 사망한 이튿날인 3일 오후 사고 현장을 찾았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현장 건물은 이날 점심때까지도 열려 있었다고 한다. 대책위의 방문이 확정되고 언론이 몰려들자 돌연 굳게 잠겼다.

대책위와 권영국 대선 후보가 고인의 작업 현장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다소미 기자. 
대책위와 권영국 대선 후보가 고인의 작업 현장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다소미 기자. 

대책위 측은 건물 문을 열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서부발전측은 난색을 표하다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국 현장을 제한된 인원에게만 공개하겠다는 결정이 나왔지만 여전히 서부발전 측은 머뭇거렸고 현장에 참석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지금 뭐하는 겁니까”라고 소리를 지르자 들어갈 수 있었다.

사고 현장에 들어갔던 대책위 관계자는 “현장이 보존되지 않고 정리가 돼 있었다. 일부 핏자국은 휴지로 덮여 있었지만 정확한 사고 발생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부품들과 기계 일부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며 분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장에는 고인이 사용했던 달력과 책이 있었다. 고인의 흔적은 남아있는데 고인은 없다. 현장을 확인하려고 했던 이유는 어떤 시스템이 노동자를 죽일 수 있는 것인지, 다른 노동자를 죽이지 않기 위한 힘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의 최진일 대표는 현장 확인 이후 이뤄진 추가 기자회견에서 “현장 소장은 고인이 했던 작업이 어떤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반 기계 외에도 여러 공작 기계가 있었다. 공작 기계는 안전 장치가 부실할때만 위험한 게 아니라 그 자체로도 굉장히 고위험의 장비들이다. 김충현 씨 혼자서 그 많은 장비를 다루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고인이 숨진 작업장 앞에는 발전소 측이 마련한 것으로 추정되는 간이 빈소가 마련됐다. 대책위는 유족의 허락없이 빈소를 마련했다고 비판했다. 김다소미 기자. 
고인이 숨진 작업장 앞에는 발전소 측이 마련한 것으로 추정되는 간이 빈소가 마련됐다. 대책위는 유족의 허락없이 빈소를 마련했다고 비판했다. 김다소미 기자. 

또 “안전작업계획서 등이 있다. 작업의 표준이 담겨 있는 서류다. 김 씨의 툴박스 미팅서류가 있었다. 관리감독자 사인이 있었는데 이분은 김 씨의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작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결국 여기거 혼자 여러대의 공작 기계를 다루는 작업에 대해 실제로 관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대표는 “혼자 알아서 다 하고 있었고 혼자 일하다 돌아가신 거다.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사고가 났다. 기계의 회전체가 균형이 틀어지면서 편심이 작동했고 왼쪽 팔부터 말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유족 대표로 발언대에 나선 김 씨의 사촌형님 김현문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는데도 현장에 와보니 보존이 안돼 있다. 서류상으로 (사측이 책임을 회피하려) 짜맞춰 놓을 수 도 있다. 경찰 수사가 이뤄져 자세하게 공개를 못하겠다고 한다”며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정말 개탄스럽다. 내 동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울분 나는 일 아니겠나”고 호소했다.

고인의 사촌형 김현문씨.김다소미 기자.
고인의 사촌형 김현문씨.김다소미 기자.

김 씨는 “대한민국 이런식으로 흘러가면 안된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중대재해법에 따른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도 책임자에게 질문을 하면 원론적 말뿐이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현장에 나오지 않는다. 진상규명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서부발전은 지난 4월 14일부터 6월 13일까지 집중 안전점검 기간이었다.

고인의 지인이 보여준 김 씨의 봉사활동 모습.김다소미 기자.
고인의 지인이 보여준 김 씨의 봉사활동 모습.김다소미 기자.

장례식장에선 김 씨의 친구 임동성 씨가 2일 사망한 친구의 영정사진을 안은 채 “내 친구 충현아 좋은 곳 가거라”라며 흐느꼈다. 그의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는 그의 동료, 가족, 지인들이 달려와 그의 죽음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의 모친은 아들의 영정사진을 붙들고 내내 눈물을 흘렸다. 상주인 그의 친형도 표정 변화 없이 조문객을 조용히 맞이했다. 아직 어린 김 씨의 조카들은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김 씨와 절친했던 친구 임 씨는 눈물을 닦으며 그와 함께했던 사진을 보여줬다. “얼마나 세심했던 사람이었는데..어쩔때는 요령도 피울 법 한데 언제나 정도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친구”라며 “지난달에도 만났다. (운영하는 회사에서 직원들과) 고기 구워먹을 난로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이것저것 보여주며 이런 건 어떠냐고도 했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가 생전 보유한 기술자격증. 김다소미 기자.
김 씨가 생전 보유한 기술자격증. 김다소미 기자.

임 씨는 “충현이 연봉이 3600만 원이다. 정비 업계 자격증도 여러 개 따며 항상 공부하려고 했다. 내가 매번 충현이한테 했던 말이 ‘그 정도 기술력에 자격증까지 있는데 왜 그돈 받고 일하냐’고 했다. 그렇게 고생만 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 씨가 속했던 하청업체 한전KPS가 그의 죽음에 대해 “임의 작업 중 난 사고다. 작업 오더가 없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말도 안된다. 성격이 깔끔하고 정확해서 주먹구구로 그랬을 리가 없다. 시키지 않은 일을 혼자서 알아서 할 친구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가족과 같은 사이였다는 지인 A씨도 옆에서 “워낙 고지식한 성격이다. 매번 생일도 챙겨주면서 다정했다. 내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죽기 며칠 전에도 어디 다녀오더니 지역 무슨 막걸리가 유명하다고 몇병 사다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울었다.

김 씨는 생전 자신이 가진 기술을 나누는데 열심이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전국 곳곳을 돌며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방문해 보일러를 수리해 주는 봉사를 꾸준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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