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난맥] 전한빛 대전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대전지역 시민사회가 민선 8기 후반기를 맞아 <대전난맥>이라는 이름으로 시정 평가 칼럼을 연재합니다. 연말까지 인권, 생태·환경, 기후·에너지, 자치·민주주의, 교육, 노동, 보건, 교통, 공동체, 여성, 성소수자·차별금지법, 극우·내란청산, 경제·재정, 행정 등 각 분야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시정 난맥상을 짚습니다. <편집자주>

시대를 잇는 우리의 연대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집회 모습. sunny 제공.
시대를 잇는 우리의 연대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집회 모습. sunny 제공.

논쟁과 의문은 여전하지만, 중앙정부는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해 성평등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렇다면 민선 8기 3년이 지난 지금, 대전시의 여성·성평등 정책은 어디에 서 있는가?

민선 8기 출범 직후 시는 당시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기조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사실상 구조적 해체에 가까운 급격한 후퇴를 겪었다. 기획조정실 산하 성인지정책담당관이 폐지되며 성주류화 컨트롤타워가 사라졌고, 여성친화도시 조성, 젠더폭력 예방 청년활동가 양성, 성평등 의식 제고 등 그동안 성과를 축적해온 핵심 사업들이 한꺼번에 삭제·축소됐다.

성인지·성평등 정책 연구를 위한 예산 전액 삭감은 정책 개발 기반 약화로 이어졌고, 양성평등위원회와 성평등기금 등 시민사회와 협력해 정책을 설계했던 제도적 장치까지 정치적 재편 속에서 기능을 상실했다. 민선 8기 첫해는 성평등 추진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시민사회와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무너지는 등 대전시 성평등 행정이 뿌리째 흔들린 시기였다.

이러한 반(反)성평등 정책 기조의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행정 조직 체계 역시 계속 흔들리고 있다. 올해 대전시는 성평등 전담부서를 교육정책전략국 소속으로 이관하며, 여성·성평등 정책 담당부서를 교육 정책 산하로 이동시켰다. 성인지정책팀은 증원(5명→6명)되었으나 여성권익팀은 기존 4명에서 2명으로 절반을 축소했다. 이는 성폭력·성매매 피해자 지원, 권익 보호, 젠더폭력 예방정책 등 핵심 업무의 실행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

또한 성평등 정책 전담부서가 교육정책 하위 영역으로 편제되면서 정책 일관성과 전문성이 저해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민선 8기 들어 대전시의 여성·성평등 정책 전담부서는 성인지정책담당관실에서 복지국으로, 복지국에서 다시 교육정책전략국 산하로 재편됐다. 전담부서가 정권 교체와 조직 개편의 흐름 속에서 계속해서 바뀐 현실은, 시 여성·성평등 정책의 방향성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 정책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이라는 목표와도 괴리가 있다. 대전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4.1%로 여전히 남성(71.1%)에 비해 17%p 가까이 낮다. 고용률 또한 여성 52.5%, 남성 69.0%로 격차가 뚜렷하다. 성별 임금격차는 어떠한가? 2019년부터 현재까지, 여성의 임금은 남성 대비 65~68% 수준이다.

특히 40대 이후에는 경력단절로 인해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재취업 시 저임금·비정규직으로 재진입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전시의 여성 노동자 약 70%가 월 300만 원 미만 임금을 받고 있고, 경력단절 경험이 있는 여성의 경우 절반 이상이 200만 원 미만 저임금에 머물고 있다. 여성 고용의 질적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대안 없는 대전시, 성평등 정책 체계 다시 세워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기존 여성 취·창업 박람회는 삭제됐고, 청년 여성 초기 경력 형성 지원 프로그램은 대상이 불명확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를 위한 정책은 단순한 일자리 알선이나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경력단절여성 외에도 연령, 교육 수준 등 사회적 조건을 고려한 임금 수준의 질적 향상과 불평등 완화 전략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 예산 구조를 보면, 올해 한부모가족 지원은 감액된 반면 건강가정 지원은 대폭 확대됐다. 다양한 가족 형태, 특히 취약 가구와 한부모가족을 지원하는 사업이 축소된 점은 성평등 정책의 본래 취지와도 배치되는 일이다. 나아가 성인지 정책 추진, 양성평등위원회 운영 등 성평등 기반을 제도적으로 확충하는 사업이 축소되면서 성평등 정책은 점차 ‘돌봄 지원’과 ‘복지적 시혜’의 틀 안에 갇히고 있다.

올해 들어 시는 처음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개최하며 돌봄·노동·폭력 피해 지원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기존 시민사회단체를 배제하고 이장우 시장의 정치적 지지 기반 세력 위주로 위원을 재편한 것은 대표성과 균형성을 훼손한 조치로 평가된다. 나아가 위원회 회의를 통해 제시한 주요 사업에는 청년부부 결혼장려금, 청년 매칭사업 등 인구정책적 성격의 사업이 신설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취지와 명백히 어긋난다.

실제 2025년 주요업무보고서에서도 ‘가족문화정책’, ‘결혼·출산 긍정적 인식 확산 사업’ 등이 성평등 정책 전담부서 사업으로 명시됐다. 성평등 정책을 가족 정책의 하위 범주로 축소시키는 반복적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같은 기조는 여성의 출산 가능성과 돌봄 수행 능력을 전제로 한 대상화적 접근에 불과하며, 성평등을 국가 재생산 위기 해결 수단으로 이용하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와의 협력적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진전은 보이지 않는다. 2023년과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성평등 정책 수립 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연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부재한 점은 성평등 정책을 단발적 사업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실질적 변화를 이끌 동력마저 약화시킨다. 

대전시 여성·성평등 정책은 전담부서 예산 증액이라는 ‘지표상의 확대’만 있을 뿐, 실제 역량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구조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기반은 강화되지 않았고, 조직체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며, 정책은 복지적 대응으로 축소됐다. 여성의 경제활동 격차와 공공대표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과제도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전한빛 대전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전한빛 대전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민선 8기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대전시가 성평등을 과연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민주주의를 위한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는 이제라도 지난 몇 년간의 후퇴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신뢰와 협력을 복원해 성평등 정책 전담부서를 재정비하고, 성평등 추진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성평등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성평등을 말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고, 정책을 축소하고, 시민사회를 배제하는 행정이 더 이상 지속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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