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난맥] 박종갑 민주노총대전본부 정책기획국장
대전지역 시민사회가 민선 8기 후반기를 맞아 <대전난맥>이라는 이름으로 시정 평가 칼럼을 연재합니다. 연말까지 인권, 생태·환경, 기후·에너지, 자치·민주주의, 교육, 노동, 보건, 교통, 공동체, 여성, 성소수자·차별금지법, 극우·내란청산, 경제·재정, 행정 등 각 분야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시정 난맥상을 짚습니다. <편집자주>
대전시가 발표한 내년도 생활임금은 인상 폭, 적용 범위, 정책 추진력 모든 점에서 ‘생활임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 개선과는 거리가 먼, 수치상 인상에 그친 미봉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도 대전시 생활임금 시급은 1만 2043원이다. 올해보다 3.5% 인상된 금액이다. 겉으로는 진전처럼 보이지만, 정책의 실질 내용은 ‘생활안정’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제도의 목적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생활임금 제도는 단순한 행정적 기준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그러나 대전시 생활임금은 그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제도 설계와 실행 측면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비교하면, 대전의 생활임금은 최하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울산과 더불어 ‘꼴찌’였고,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와 내년도 생활임금은 15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중위수준을 유지하던 생활임금은 2022년부터 급격히 하락해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심지어 중구와 유성구 등 자치구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인구수와 재정자립도가 비슷한 광주와 비교하면, 월급 수준은 월 27만 원 이상 적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는 소외되고,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적용 범위, 민간 확대도 제자리걸음
대전시 생활임금 적용 대상은 시청과 산하 출자·출연기관의 직접고용 및 민간위탁 노동자로 제한된다. 매년 생활임금위원회에서 생활임금액과 적용 범위를 결정하고 있지만, 수년째 적용 범위는 그대로다. 특히 5개 구청은 조례를 통해 적용 범위를 직접고용노동자로 제한하고 있어 있으나마나 한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전시장과 5개 구청장, 교육감은 '생활임금 제도가 확대될 수 있도록 홍보 및 교육'할 책무가 있다. 공공기금 사용에 따른 책임을 부과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확보하고, 모범사용자로서 민간부문의 노동조건을 선도해야 할 의무도 있다.
이들은 또 지역 내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업무협약 등 적극적인 정책수단을 마련해 생활임금의 민간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최저임금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생활임금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더는 재정 부담을 핑계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생활임금은 '투자'이지 '비용'이 아니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 안정을 보장하고 소비를 진작시켜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만드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
시는 생활임금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정책 기조도 바꿔야 한다. 전국 최하위 생활임금이라는 이 부끄러운 '난맥'을 풀지 않고서는 '일류 경제 도시 대전' 비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