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측 공식 입장 담아 교내 '대자보' 게시
해명 내용 두고 학생 측 반발로 곧바로 철거
공주 영명고등학교가 성적우수자 특혜반(소망반) 운영과 생활기록부 조작, 기출문제 유출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가운데 학교 측이 대자보 형식으로 공식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주요 쟁점에 대한 설명이 충남교육청 감사 결과와 상충하고, 학생회 간담회 녹취 내용과도 어긋나는 대목이 적지 않아 향후 학생 측 대응이 주목된다.
20일 <디트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영명고 학생회는 전날 교감을 비롯해 이번 사안의 핵심 당사자인 보직교사 A, B씨와 간담회를 열고 학교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질의했다. 학교 측은 이후 학교 내에 대자보를 게시해 생활기록부 조작 의혹, 공주대 협력 프로그램 출결 문제, 수학 시험문제 유사 출제 의혹 등에 대한 해명 입장을 밝혔다.
생기부 ‘복붙’..“의도적 조작 아냐”
학교는 먼저 대자보를 통해 생활기록부(생기부) 조작 의혹에 대해 “언론에서 사용한 ‘생기부 조작’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면이 있다”며 “담당 교사가 학생의 실제 활동이 누락된 부분을 보완·수정하는 과정에서 절차와 방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의도적인 조작이 아니며 학생들을 돕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 사안은 교사 A씨가 생기부 기록 권한이 없는 항목별 내용을 부당 수정 후 입력을 요청한 사안으로 이른바 ‘컨설팅 결과’라고 작성한 엑셀 파일을 단톡방에 올려 ‘그대로 해당 기록을 드래그 하셔서 복사 붙이기’ 해달라고 항목별 담당 교사에게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충남교육청 감사 결과에서는 이 과정에 대해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권한이 없는 항목별 내용을 부당 수정 후 입력을 요청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해당 교사에게 ‘정직’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학교가 대자보에서 설명한 “학생 실제 활동이 누락된 부분을 보완한 수준”, “의도적 조작은 아니다”라는 표현과는 상당한 온도 차를 보이는 대목이다. 생기부 정정을 ‘학생 완성도 향상’ 차원의 보조가 아니라, 권한 없는 교사가 특정 집단(소망반)의 생기부를 구조적으로 재작성·관여한 비위로 본 것이다.
<디트뉴스>가 확보한 학생회 간담회 녹취에 따르면 A씨는 이 대목과 관련해 “복사 붙여넣기 하세요라는 맥락은 아마 현직 선생님들이면 공식적인 언어로 말씀하시지 않겠지만 뭘 의미하시는지 아실 것”이라며 “그게 그대로 넣으라(복붙)는 의미가 아니라 업무 수행에 있어서 좀 편하게 하시면 좋겠다라는 맥락”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 당시에 그 역할을 했을 때(생기부 복붙 요청)에는 학교 선생님들의 어떤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가정 하에 움직였다. 그 엑셀 파일을 보고 입력을 하는 것부터는 담당 교과 선생님의 영역과 역할이었다는 의미”라며 “생기부 관리는 교장선생님의 지시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석한 교감은 “생기부 등에 대해 학생들을 위해 외압 없이 자기 교과를 책임지고 쓰겠다고 하는 (재발방지 서약서) 등을 받아놓을 계획”이라고 거들었다.
소망반만 참여할 수 있는 ‘특별동아리’
‘공주대학교 협력 프로그램 출결 문제’에 대해서도 학교 해명과 기록은 엇갈린다. 학교는 대자보에서 “프로그램 참여 학생의 출결 처리가 ‘인정결과’로 반영되지 않은 것은 단순 행정 착오”라며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고, 고의적 누락이나 학생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한 정황은 없어 징계 사안으로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간담회 녹취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한 A교사는 일과 시간 중 공문 없이 학생들을 외부 실험에 참여시켰고, 출결 증빙에 대해서는 “사진을 찍어뒀다”는 정도로만 설명했다. 그는 “(공주대) 교수 일정이 주먹구구식이라 당일 오전에야 확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며, 정식 절차 없이 소망반 학생들을 일과 시간에 이동시킨 사실을 사실상 인정했다.
나아가 충남교육청 감사 결과는 소망반 운영과 관련해 학교가 방과후학교를 성적 우수학생 특별반으로 편성·운영하고, 소망반 학생만 선택 가능한 동아리와 대학 입시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한 점을 ‘방과후학교 운영 부적정’으로 지적하며 학교에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는 학교가 “학생에게 유리한 조작은 없었다”고 주장한 취지와 달리, 감사는 소망반이 선택권·프로그램·출결에서 구조적 특혜를 누린 집단이었음을 전제로 문제를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청 “시험문제 유출에 해당”
수학 시험문제 유사 출제 의혹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대자보에서 “정기고사 수학 문제가 기출문제와 동일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유사한 형태의 문항 대부분이 계산 문제와 교과서 문제의 변형이며, 이는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한 통상적 출제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유사 문항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던 점은 잘못으로 인정돼 관련 교사에게 징계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충남교육청 감사는 2024학년도 2학년 2학기 수학Ⅱ 1회고사에서 2021학년도 기출문제 20문항 중 7문항(35%), 2회고사에서 20문항 중 8문항(40%)이 동일·유사하게 반복 출제됐다고 확인했다.
감사는 앞서 해당 수학 교사가 시험 직전에 2021학년도 수학Ⅱ 1·2회고사 출제원안과 정답지 복사본을 소망반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실제 시험과 같은 조건으로 풀게 한 사실도 함께 적시했다.
감사 문서는 이에 대해 “새롭게 출제한 문제는 아니더라도, 기출문제를 사전에 제공하고 풀게 한 후 동일·유사 문항을 반복 출제한 행위는 특정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명시했다. 단순한 ‘유사 출제’가 아니라 시험문제 유출에 해당하는 비위로 판단한 것이다.
학생회 간담회 녹취에서도 해당 교사는 “교과서 대표 명제를 늘 묶어서 설명해왔고, 학생 질문이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강조했다”고 말하며 특정 명제를 지속적으로 지도해 왔음을 인정했다. 또 “기출문제를 수업 시간에 풀게 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이번에야 알게 됐다”고 말해 자신이 수업·기출 연습을 통해 실제 출제 문항과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못했다.
결국 학교는 대자보에서 생기부 의혹을 “절차·방법상의 미비”, 출결 문제를 “단순 행정 착오”, 시험문제 의혹을 “검토 부족으로 인한 유사 출제” 정도로 축소 설명하고 있지만, 충남교육청 감사 결과와 학생회 간담회 내용은 ▲소망반 학생만을 상대로 한 기출문제 사전 제공 및 반복 출제 ▲권한 없는 교사의 소망반 생기부 대량 작성·복붙 요청 ▲소망반 중심 프로그램·출결 특혜 등의 구조적 관여를 드러내고 있다.
학생회는 학교 측 해명이 “과장된 표현을 바로잡겠다”는 수준을 넘어, 감사 결과와 녹취로 확인된 핵심 쟁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학교의 이번 대자보가 논란을 수습하기보다는 새로운 진실 공방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재학생 C군은 <디트뉴스>와 통화에서 “대자보 내용을 보고 해당 사안을 겪었던 다수의 재학생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다르다며 학교 측에 곧바로 항의했다”며 “학생회에서도 너무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명고는 학생들의 반발 이후 대자보를 게시한지 두시간 여 만에 철거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