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부 공개
한전KPS 주말 긴급 작업 지시 정황 확인
대책위 "사실상 불법파견 방식"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故김충현 씨가 수시로 원청인 한전KPS측에서 작업을 지시받아 이행했던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김 씨는 한전KPS 측 관계자에게 “절차대로 해달라”며 답변한 내용의 카카오톡 메신저가 공개됐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원청인 한전KPS가 2차하청업체인 한국파워오엔엠 소속 노동자(故김충현 씨)에게 직접적으로 업무 지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하며 고인은 관련한 고충을 한전KPS 측 관계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속했던 한국파워오엔엠(2025년 1월부터 근무)은 한전KPS로부터 ‘발전소 정비업무’를 하청받은 업체이다. 고인은 베테랑 정비기계 숙련공으로서 유일하게 공작기계 담당자로 선임돼 일해왔다.
유족의 동의를 받은 태안화력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는 17일 언론에 고인의 메신저 대화 내용 캡쳐본을 공개하고 생전 고인이 작업 도중 겪었던 불합리함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대책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KPS가 작성한 ‘공작기계 정비절차’에는 매우 예외적이고 긴급한 돌발작업이 아니고는 반드시 작업지시서를 발행하고 TBM(Tool Box Meeting, 작업 전 회의) 회의를 진행한 후 ‘승인 후 작업 순’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작업 전 절차 과정에서 위험작업이 걸러지거나 대안적 방식이 검토될 수 있어, 작업절차를 지키는 것은 안전작업 수행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작업지시서는 고인의 회사인 한국파워오엔엠의 현장 소장이 한전KPS로부터 작업 오더를 받고 소속 노동자에게 작업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전KPS→하청업체 소속 고인에게 작업지시
故김충현 씨는 2025년 3월 10일 한전KPS 측 관계자에게 “00님, TBM 일지 싸인을 받아야 작업 가능합니다. 지나시는 김에 일지 싸인 좀 해주세요”라고 요청한다. 담당자는 “알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오후가 되자 고인이 작업물 사진을 보내며 “다 됐습니다. 용접해주시면 마무리 다듬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상황은 2024년에도 있었다. 고인은 “지난주 주신 너트로 이어서 가공을 하려는데 기계가공 작업의뢰서와 TBM일지 공사감독란에 싸인이 필요합니다. 금요일 작업때는 다른 일로 TBM일지 싸인 받아놓은 게 괜찮았습니다. 지나는 길이든 다른 KPS 직원분중에 공사감독란에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고 말한다.
그보다 훨씬 전 2022년에는 김 씨가 “00님, TBM일지 하단부에 공사감독 확인란에 싸인을 받아야 된 답니다. 오후업무 전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요청한다. 당시 소속 업체는 현재의 한국파워오엔엠이 아니다.
이후 다른 메신저에서는 한전KPS측 관계자가 “저희도 외주 가공하고 싶은데 너무 긴급이고 주말에 시간적 여유가 정지 기간에 진행해야 해서 사정이 좀 많습니다”라고 요청한 기록도 발견됐다.
김 씨에게 별도의 작업 관련 긴급 지시를 내린 것으로 유추된다. 이에 고인은 “후속 처리에 대한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하면 진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한전KPS 측은 “네네 그건 감독사에서 책임질겁니다. 그거 책임 못지면 외주로 하라고 하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이에 고인은 다시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현품보고 가공했는데 시행착오나 잘못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에요. 공차가 맞지 않아 문제가 되거나 하는것들요, 00에 협의해 대응하는게 자체 대응보다 낫지 않나 싶어서요”라고 말한다.
원청, 원칙 없는 긴급 작업 요청에 사실상 작업 거부
다시 한전KPS 측은 “그런 문제는 감독하고 다 협의했고 제작사나 사용 중 문제에 대해선 감독이 책임지기로 했습니다”라며 “뭐 걱정하시는지도 알고 저도 깔끔하게 외주 주고 싶은데 상황이 아무리 알아봐도 해결이 안돼서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김 씨는 “여기서 가공을 진행하신다면 소장님(본인 소속 2차하청업체)을 통해서 업무절차에 따라 진행하시면 될 거 같아요. 전 소장님 업무 지시에 따라 작업하는 입장이라 작업지시서를 소장님께 드리면 업무 협조를 지시하시면 될 거에요. 저도 주말에서 시골가서 해야하는 일이 있는지라 명확하게 일정을 알려주시면 그에 맞춰 일정을 조정할게요”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주말 제작을 강요할 정도로 원청의 압박이 센 상황이었다. 중요한 대목은 ‘감독과 다 협의했고, 감독이 책임지기로 했다’는 발언이다. 책임의 부담을 느낀 고인이 작업거부와 같은 의사표시인 ‘현장 소장을 통해 업무절차를 진행’ 해달라고 요청하자 설득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김충현 님이 언급한 감독이 서부발전 원청 소속 현장 감독인지 혹은 KPS, 하청 감리감독인지는 명확히 밝혀져야 할 핵심이다. 만약 실질적 작업 지시와 승인, 책임 협의가 서부 발전 감독과 이뤄졌다면 이는 단순한 하청의 문제가 아닌 원청이 개입된 구조적 강요였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올해 2월 초에는 한전KPS 측에게 공작기계실 청소용 빗자루, 수세미, 청소용 페인트붓 등 구매를 요청하며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챙겨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이라고 말했다.
연초에 필요한 공구와 물품을 한전KPS에 요청하는 내용도 발견됐다. 고인이 예산에 대한 언급을 하며 한전KPS가 담당하는 “OH(계획예방정비공사) 공사 일정을 감안해 미리 챙겨두려한다”고 했다.
한사람에 쏠린 정비업무 “좀 벅차다” 도움 요청
대책위는 “OH 일정은 한국파워오앤엠의 계약상 역무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이다. 고인을 한전KPS의 ‘비공식 인력’처럼 활용한 정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안녕하세요. 오늘 오전 업무 전 회의시간에 소장님께서 앞으로는 팀 구분 없이 일을 해야된다는 얘기를 하시며 (기계1팀 기전팀 기계2팀) 크레인 용접 선반도 예외 없이 기계쪽 일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의 진행이 팀 직군 구분 없이 다 해야된다는 것 입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협력사외에 관리감독? 받고 있는 곳이 기술팀으로 알고 있는데 업무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 해서 연락드려 봅니다”고 말했다.
2020년 다른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할 당시에는 “00업체와 계약내용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급여테이블이 공개됐고 저는 경상 20시간을 안 한다고 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맡고 있는 공작실 업무와 기동 정지대기를 서라고 하는데 제겐 부담되는 일입니다. 야간의 기계관련 일을 대응 후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있고 쉰다 하더라도 대응해줄 인원이 없어 안된다고 하였고 책임지는 업무범위가 복합까지 대응하니 이해해달라 하였습니다. 좀 벅찹니다. 책임지는 업무범위도 넓은데다 대응해주는 사람도 없다보니 혼자 해결해야합니다. 그래서 도와달라 부탁을 드리려 연락을 했습니다. 소장님도 동료들의 입장이 단호해 이해해줄 수 있는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 며칠 잠도 못자고 맘 고생이 좀 있습니다. 다른분께도 조언을 구해보고 방향을 찾은게 지금의 협력사 조직구성에서 선반 용접을 팀 소속에서 기술지원이라는 항목으로 빼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도움을 청했다.
고인은 이 메시지를 보낸 후 당시 소속돼 있던 하청업체에서 300~400만 원의 연봉이 깎이며 1달만에 나와 1년 간 발전소를 떠났다가 이듬해 다시 다른 업체 소속으로 복귀한다.
발전소는 다단계식 하청구조를 갖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은 같아도 소속 업체는 대부분 1년에 한번씩 변경된다. 한국서부발전이 일부 업무에 대해 총액 입찰을 띄우면 낙찰받은 하청 업체와 협력업체는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소속 업체 변경을 원하지 않더라도 고용승계를 약속한 회사로 이리저리 옮겨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라는 의미다.
故김충현 씨도 9년 간 8번의 업체가 바뀌었다. 아직까지도 발전소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퇴직금은 물론, 장기근속에 따라 주어지는 당연한 법적 권리도 누릴 수 없다.
한전KPS는 <디트뉴스>와 통화에서 "수사중인 사안이라 별도로 입장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故김충현 씨 삼일장 시작..김민석 총리 후보자 조문
- 故김충현 노동자 장례식 엄수, 18일 발인
- '故김충현 사망사고' 서부발전·한전KPS 본사 압수수색
- '태안화력 사고' 故김충현 씨 사인은 '다발성 골절' 추정
- 故김충현 휴대폰 분석, 한전KPS 작업지시 정황 확인
- ‘故김충현 모독 논란’ 충남도의회 사과..“공감 부족 모습 죄송”
- 故김충현 사고 대책위 “충남도의회 당장 공개 사과하라”
- 충남도의회, 故김충현 사고 '대책 따로, 사진 따로?'
- “왜 또 혼자였냐”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 ‘故김충현 사고’ 현장 찾은 우원식 “노동부 납득 안돼” 질타
- ‘故김충현 사고 대책위’ 강훈식 비서실장에 요구안 전달
- "원청 지시 있었다"…故김충현 대책위, 한전KPS 주장 반박
- 故김충현 비정규직 사고 대책위, 李 대통령 향해 행진한다
- 죽음이 또 말한다…태안화력 ‘위험의 외주화’ 언제 멈추나
- 또 한 명의 김용균···故김충현 죽음에 유족·노동계 분노
-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직원 끼임 사고로 사망
- ‘태안화력 폐지’ 앞둔 태안군, 지역 피해 최소화 대책 마련 총력!
- “폐지는 코앞, 정부는 뒷짐” 석탄화력 비정규직 호소 들은 추미애
- “차별없는 세상에서 만나자” 故김충현 눈물의 영결식
- 정부 ‘태안화력 사망사고’ 협의체 구성..대책위 “기재부 왜 빠지나”
- 5개 발전사, 故김충현 죽음은 침묵하고 ‘협약식’은 참석
- 서부발전·한전KPS "책무 다하지 못해" 공식 사과
- 다시 '죽음의 일터'로 밀려나는 故김충현 동료들
- 노동자가 이겼다···법원 ‘한전KPS 불법파견’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