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지난 2일 작업 도중 사망..18일 발인
한전KPS '불법파견·임금착복' 의혹 불거져
노동계에 남겨진 '죽음의 외주화' 철폐 숙제
“내 친구 충현아 그곳에서는 차별, 아픔, 고통없이 살아라. 둘만의 이별의 시간도 없이 떠난 내 친구. 꼭 내 꿈에 나와서 영원한 이별의 이야기 나누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故김충현 씨의 영결식이 18일 고인의 일터이자 생의 마지막이 됐던 발전소에서 열렸다. 그와 초등학교부터 우정을 나눴던 임동성 씨는 친구를 대표해 편지를 낭독하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날 오전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서는 지난 2일 고인이 숨진 후 14일만에 열린 장례의 발인식이 거행됐고 고인을 실은 운구차는 유족, 동료, 지역민, 노동계 인사들과 함께 발전소로 향했다.
고인의 친형은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동생도 마음 편히 갔을 것”이라며 짧은 인사로 동생을 보냈다.
고인의 오랜 친구 임 씨는 “충현아. 충현아. 이렇게 부르면 나를 반갑게 맞았잖아. 이제는 대답이 없네. 너를 알고 지낸 50년의 추억이 며칠 동안 주마등처럼 흘렀다. 가을이면 산에 가서 머루 따고 다래 따고 버섯 따고 했던 시절, 성인이 돼서는 가끔 통화하고 시간 나면 만나서 소주 한잔해 옛 얘기도 하고 정치 얘기도 해보고 넌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또 친구의 존재, 소중함을 알 일깨워준 친구였다”며 흐느꼈다.
임 씨는 “그곳에서 날 기다려달라. 언젠가 널 만나러갈게 내 친구 충현아 꼭 다시 봅세”라며 떠난 고인을 향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
故김충현 씨는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기계공작실에서 범용선반 기계를 다루던 중 팔이 끼이며 사망했다. 그보다 훨씬 앞서 2018년 故김용균 씨도 같은 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지면서 위험한 작업에 대해선 ‘2인1조’ 원칙이 현장에 권고됐지만 정부와 사회는 이를 강제하지 않았다.
고인은 공기업 한전KPS의 하청업체 한국파워오엔엠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9년 간 발전소에서 일했고 그 사이 소속업체는 8번이나 변경됐다. 발전소 노동시장이 다단계 하청구조(죽음의 외주화)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고용 승계 등의 스트레스도 상당했음이 동료들의 증언으로 점점 드러나고 있다.
고인이 사망한 직후 한전KPS는 “당일 작업 오더가 없었다”고 말하며 고인의 사망사고에 대해 회피하는 태도로 질타를 받았다. 유족과 동료들이 구성한 사망사고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는 고인의 핸드폰을 분석한 결과 생전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원청인 한전KPS 측으로부터 작업 지시를 받았고 이는 ‘불법파견’ 형태이며 모든 책임을 고인이 지게끔 했다고 지적했다.
또 작업 지시나 작업 전 회의도 형식적으로만 이뤄지자 고인은 여러 차례 한전KPS 측에 “절차대로 해달라”, “좀 벅차다” 등의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충현이 형은 누구보다 성실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봉사와 나눔도 실천하던 좋은 형이었지만, 서부발전과 한전KPS는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며 “오늘 형을 보내지만, 그가 겪었던 일터, 맞섰던 구조, 꿈꿨던 세상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겠다. 그의 삶에 부끄럽지 않도록 모두가 안전한 사회, 비정규직 없는 사회를 위해 나아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년 한전KPS 노동자들은 법원에 한전KPS를 상대로한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했다. 고인의 영결식 다음날인 19일 최후 변론이 예정됐다. 대책위 관계자는 “사법부가 더 빠르게 판단했다면 죽지 않아도 되는 목숨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의 변호사로 선임된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는 “오늘 가장 성실했던 노동자가 우리 곁을 떠난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죽음의 상징처럼 됐다. 온통 책임만 떠안은 채 외주화의 희생양이 됐다. 故김용균이 변을 당했을 때 또다시 같은 희생이 재발되지 않도록 고용 구조를 바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노동을 차별하는 하청 구조를 바꾸라고, 그 구조가 사람을 죽인다고 그렇게 바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절규했다.
권 대표는 이어 “여기는 공기업이 하는 일이기에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권고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로 연결된 노동을 원·하청으로 구분하고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차별하면 안전은 형식화되고 위험은 아래로 떠넘겨진다고,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나누고 차별하지 말라고 그러면 위험이 더 커진다고 그러면 사람이 죽는다고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라며 “왜 듣지 않는가. 우리는 약속합시다. 죽음과 안전을 외면하는 정치의 기업 경영에 자본의 탐력에 맞서 싸우자고 오늘 약속합시다”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일했던 손인웅 씨는 조사에서 “너는 항상 말했지. 동료, 동생들에게 자격증 공부 방법과 실기 연습을 알려줘 자격증 없는 동료들에게 꼭 배움을 전파하고 싶다. 이 말을 정말 여러번 했지. 니가 살던 마을 이장님도 정말 좋은 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주말에 집에 갔다 오면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렇게 너의 베풂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더구나. 더 이상 외롭지 마시게나. 다음에 또 좋은 인연으로 만나 이 세상 같이 살아보세. 그때는 꼭 오래오래 살아야 하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한편 이날 충남도청에서는 '대기오염 자발적 감축 협약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대해 고용문제, 지역 경제 문제 등이 언급됐지만 이번 고인의 사망사고와 관련해선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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