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구조적 도시 통합, 역기능 상당”
“메가리전·시티리전, 시대적 흐름”
“수도권 모방 사고 벗어나야” 조언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가 '행정통합과 메가시티의 허상', '거대도시의 역기능'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지혜 기자.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가 '행정통합과 메가시티의 허상', '거대도시의 역기능'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지혜 기자.

민선 8기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행정통합을 외치고 있다. 대전과 충남, 대구와 경북이 대표적이다. 6·3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도 ‘메가시티, 메가폴리스’ 공약을 내놨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압도한다는 논리 속에서 역기능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행정이 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무적의 카드’로 행정통합과 메가시티를 언급하는 동안, 이미 전 세계적 도시 담론은 메가리전, 시티리전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광역정부를 그대로 두고, 필요에 따라 협력하는 방식의 다수준, 다중심 거버넌스가 주목받고 있는 것.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도시는 유연함과 민첩성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몸집은 커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작아져야 한다. 작을수록 획일성은 줄어들고, 자치 역량은 커진다. “서로 경계를 넘어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규모로 협력하는 모델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시”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

조기대선 정국,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행정통합·메가시티의 허상’이라는 도시 담론을 꺼냈다. 곽 교수는 선거철마다 시대착오적인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는 이유로, 권력 지향적인 정치권의 계산과 성장지상주의적인 편협한 상상력을 꼽았다.

그는 “행정통합, 메가시티 등 구조적 통합은 시대조류에 맞지 않다”며 “이같은 논의가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정치적 계산이 전체 논리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소외지역이 발생하고, 지역 간 불평등이 커지고, 문제 해결의 비효율이 커질 것이라는 거대도시의 역기능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거대한 원(one) 사이즈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허상이고, 퇴행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대응하는 거대도시 만들기의 허점, 성장지상주의적 상상력에 갇힌 사람들, 권력을 유지하고자 이슈를 이용하는 정치권과 검증 없이 편승하는 주변부, 경쟁을 부추기는 중앙 정부까지. 대한민국의 도시 담론이 과거 수준에 멈춰있는 이유를 짚어봤다.

곽 교수의 연구실에서 나눈 대담을 일문일답으로 풀어 소개한다.

지난해 11월 열린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추진 공동 선언식 모습. 사진은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장우 시장과 김태흠 지사. 대전시 제공.
지난해 11월 열린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추진 공동 선언식 모습. 사진은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장우 시장과 김태흠 지사. 대전시 제공.

ㅡ 지난해 11월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통합 추진을 공동 선언했다. 이번 6·3 대선을 앞두고 최근엔 주요 대선 공약 반영 과제로도 이 의제를 선정했다. 이같은 움직임을 어떻게 보고 있나.

"행정통합은 두 개의 지방정부를 하나로 합치는 구조적인 통합이다.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시대조류에 맞지 않은 방식일뿐더러 문제점도 많다.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통합하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행정통합 추진 선언 이전에 시민공론화 과정이 없었고, 기초자치단체와의 논의도 부족했다. 경제적 논리가 앞섰다면, 대전의 연구개발 역량, 충남의 산업단지 인프라 간 시너지는 이미 발생했어야 했다. 행정통합이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초광역행정은 행정통합이 아닌 메가리전(Mega region), 시티리전(City region)이 대세다. 세계적 화두는 도시와 도시 간의 협력, 도시와 인근 중소지역 간의 협력이다."

ㅡ 대전·충남 행정통합 기대효과로 인구 규모, 지역내총생산 증가 등이 주로 언급된다. 하지만, 기대효과 측면에서 학술적인 연구나 근거는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행정통합 시 어떤 역기능이 발생할 수 있는지도 논의되지 않고 있는데.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도시 부근은 오히려 발전할 가능성이 높지만, 도시 지역과 멀어질수록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충남의 거점도시가 된 내포신도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실제 추진 단계에선 '어느 도시가 주도권을 가지느냐'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각 시·도가 추진해온 기존 정책과 계획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부터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ㅡ 행정통합이나 메가시티를 주장하는 쪽에선 거대도시가 경쟁력이 있고, 발전에 유리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허상이다. 단순히 대도시가 가진 장점에 편승하면, 주변과 전체지역이 모두 발전한다는 논리인데, 성장의 낙수효과가 골고루 분배돼 결국 전체가 발전한다는 이론은 이미 실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균형발전이나 포용발전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ㅡ 그렇다면 반대로 작은 도시가 성장이나 발전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보나.

"불확실성이 높은 현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지역이 얼마나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는가 이다. 지자체가 자율성, 자치 역량을 키워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도시의 회복탄력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이즈가 작은 것이 유리하다. 대전과 충남을 구조적 통합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이즈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두 개로 존재하면서 성장이나 자원의 부족 문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을, 단순한 통합으로 해결하겠다는 건데,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보면 퇴행에 가깝다."

ㅡ 행정통합이나 메가시티 명분으로 언급되는 수도권 1극체제 극복 과제는 어떻게 보는가. 

"커다란 광역정부 하나가 존재하면, 수도권에 맞먹는 경제 성장을 이루는 동시에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가설일 뿐이다. 이미 다른 나라 선례를 보면, 지방정부를 통합했을 때 중앙정부가 더 다루기 쉬워져 중앙의 통제력이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영국을 예로 들면, 수도인 런던과 그 외 지역의 도시 발전 방식을 두고 이같은 논리가 어마어마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수도로서 자본과 권력이 집중돼 더 바꿀 수 없는 상태에 있는데, 수도권을 경쟁 상대로 두고 모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수도권이 가진 전형적인 거대도시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우선으로 둬야한다. 모방을 위한 통합은 답이 될 수 없다."

ㅡ 인접한 여러 대도시 간 협력체계인 메가리전, 도시와 인근 중소지역 간의 협력체계인 시티리전이 이미 세계적인 담론이 됐다. 하지만 이번 6·3 대선 공약이나 지자체 차원의 논의를 보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협력을 해야 하는데, 잘 안 되니 통합하겠다고 하는 셈이다. 물론 중앙정부의 방식도 문제가 있다. 국책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자체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시킨다. 전문성을 가진 부처가 수직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지자체와 동등한 위치로 내려와 문제 해결에 참여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바다가 있고, 이를 둘러싼 여러 지역이 있다. 바다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 광역, 기초단체 할 것 없이 각 지역이 협력해야 한다. 이게 다수준 거버넌스다.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의 특별 기관을 만들어 해결하는 협력 모델이 국내에선 특별지방자치단체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넘나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앙정부는 협력 요인을 만들어주지도 않고, 지자체도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

곽현근 교수가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삼은 행정통합, 메가시티 논의가 결국 지방자치 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혜 기자.
곽현근 교수가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삼은 행정통합, 메가시티 논의가 결국 지방자치 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혜 기자.

ㅡ 지난 윤석열 정부는 미래지향적 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출범하고, 시·도 간, 기초지자체 간 행정체제 통합을 논의했다. 물론 목적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완화였다. 이같은 정부 방침은 어떻게 보는가.

"윤 정권 때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주도했던 교수진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전국을 70~80개로 통합하자는 제안을 했던 전문가들이다. 과거의 논의를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대전을 포함해 다수의 도시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실리콘밸리를 예로 들면, 이곳엔 광역지방정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9개 카운티정부만으로 발전했다. 서로 다른 시기에 탄생한 카운티가 필요에 따라 협력하면서 발전한 모델이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배경을 꼽는 질문의 답이 있다. 번역하면, “실리콘밸리에 만약 광역정부가 존재했더라면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게 결론이다. 

실제 세계적으로도 행정통합 성공 사례는 드물다. 대부분이 협력적 거버넌스 방식을 택했다. 독일의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일본의 도카이도 메가리전(도쿄, 나고야, 오사카), 네덜란드 링반(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우트레흐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ㅡ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삼은 행정통합이나 메가시티가 반대로 지방자치 쇠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지역의 필요와 여건에 따라 지역이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통합으로 거대도시를 만들어 대응하는 방식은 결국 중앙정부에 의존하겠다는 말이고, 자율성과 자치권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의 본질에 비춰보면 통합은 분명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다중심 거버넌스 즉, 의사결정 단체가 다양해야 자치성이 높아진다. 두 개의 중심을 하나의 중심으로 줄이는 것은 다중심 거버넌스에 맞지 않는다. 의사결정 중심부를 다양하게 두는 것이 언뜻 복잡할 것 같지만, 문제해결에는 훨씬 유연하다."

ㅡ 정치권과 행정이 여전히 거대도시 논의에 머물고 있다. 다양한 도시 담론의 필요성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도시는 이제 경계를 넘나들며 협력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행정통합이나 메가시티 담론은 여기 부합하지 않는다. 통합이 가져다주는 경제성이나 기대 효과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다. 유연하고 민첩하게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면 큰 몸집은 불리하다. 획일화, 경직성, 현장에서 멀어지는 문제도 생긴다. 

도시발전의 지표도 인구나 GDP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 포용력, 사회적 관계, 양극화, 사회참여 등 다양해야 한다. 커지면 전체가 발전할 것이라는 허상 속에는 결국 불균형만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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