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IN충청-①] ‘슬로시티’ 대흥면, 고려말 이성만·이순 형제 이야기 
초등 교과서 실린 ‘대표 고전’…‘의좋은 형제 축제’ 승화, 20여 년 전통 이어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나무, 저수지와 바위들. 여기에는 각각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는 ‘이게 우리 동네 이야기였어?’라고 놀랄만한 이야기들도 있다. 우리 지역의 전설을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로 꺼내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대전·세종·충남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 주>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형제는 콩 한 쪽도 나눠 먹을 만큼 우애가 좋았는데요. 당시엔 첫째아들에게 재산을 더 많이 물려주던 시대였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논과 밭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눠 가졌답니다. 

 

그렇게 각자 논에 벼를 심고 열심히 농사를 지은 뒤, 가을에 추수를 하게 됐는데요. 어찌나 사이자 좋던지, 벼를 베어 쌓은 낟가리(낟알이 붙은 곡식을 그대로 쌓은 더미)도 똑같았어요.

 

그날 밤 동생은 저녁을 먹으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형님과 벼를 똑같이 수확했지만, 암만해도 결혼해서 식구가 많은 형님이 더 많이 필요하겠지? 그런데 그냥 주면 형님이 받지 않으실텐데.. 그래! 형님 몰래 벼를 옮겨드려야겠다.”

그렇게 깜깜한 밤 몰래 형님네로 벼를 옮긴 동생은 흐뭇해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날이 밝아서 보니 볏단이 그대로 쌓여있지 않겠어요? 
“참 이상하네. 분명 힘들게 옮겼는데 말이지.”
다시 날이 지고 깜깜해지자 동생은 몰래 벼를 옮겨서 형님네 낟가리에 볏단을 쌓았어요. 혹시 몰라서 전날보다 더 많이 옮겨 놓았어요. 하지만 다음 달 아침 또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볏단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거든요.

 

이상하게 생각한 동생은 그날 밤 다시 볏단을 옮기기로 했어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볏단을 지고 가는 동생은 형님네로 가는 길에 시커먼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이런 깜깜한 밤에 도대체 누구지?’ 동생은 덜컥 겁이 났지만 볏단을 무사히 형님네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비장한 각오로 물었어요. “거기 뉘.. 뉘시오?”

 

그러자 저쪽도 우뚝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구름에 가려있던 달이 걷히자 동생은 깜짝 놀랐어요. 그 그림자는 다름 아닌 형님이었거든요. 

“아니 형님 아니십니까?” “그래, 너였구나. 어쩐지 목소리가 낯이 익더라니..”

 

맞아요. 형님도 ‘이제 새로 독립한 동생에게는 필요한 게 많을 거야’라고 생각해 동생과 같이 밤마다 몰래 벼를 옮겼던 것이지요. 놀랍게도 두 사람이 옮긴 벼의 양마저 똑같아서 서로 갖고 있던 볏단의 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제야 벼가 줄지 않은 까닭을 알아채고,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은 달님도 웃으면서 형제를 바라 보았답니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 공원'에 설치된 '의좋은 형제' 동상. 
충남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 공원'에 설치된 '의좋은 형제' 동상. 

1964년에 간행된 2학년 2학기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의좋은 형제’ 이야기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예산군 대흥면에 살았던 이성만·이순 형제의 실화를 담았다. 예전엔 모 라면회사 광고에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돼 구전처럼 내려왔다. 그러던 중 기록적인 가뭄이 계속된 지난 1978년, 예당저수지의 물이 빠지면서 형제의 ‘효제비’가 발견되며 실화로 확인됐다. 1497년(연산군 3년)에 형제의 갸륵한 우애와 효행을 기리고자 만들어진 비석이었다. 

지역에서는 2003년부터 ‘의좋은 형제 축제’를 개최하며 형제의 우애를 기리고 있다. 지역민들만 참여하는 소규모 행사에서 볏짚예술제와 트릭아트 등 가족형 농촌체험축제로 거듭나며 대표 지역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의좋은 형제 공원’도 조성돼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선물한다. 

대흥면은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슬로시티’로 지정, 슬로시티답게 자연과 문화, 역사적인 요소를 두루 갖췄다. 한국관광공사의 ‘2월 가볼 만한 곳’에 선정됐으며, 예당호중앙생태공원, 의좋은 형제공원, 느린꼬부랑길 걷기 등 아름다운 마을 탐사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인근에는 ‘2021-2022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예당호 출렁다리와 음악분수를 비롯한 예당관광지, 수덕사·불교미술관인 선미술관, 조선후기 대표적 서예가이자 문인인 추사 김정희 고택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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