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IN충청-⑬]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명에 얽힌 전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나무, 저수지와 바위들. 여기에는 각각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는 ‘이게 우리 동네 이야기였어?’라고 놀랄만한 이야기들도 있다. 우리 지역의 전설을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로 꺼내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대전·세종·충남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 주>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는 옛 절터가 있는 마을 절터골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하늘에서 죄를 짓고 승천을 기다리던 '황룡'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늘에서는 죄를 뉘우치는 황룡에게 ‘절터에서 지내며 3년 동안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임무’를 주었답니다.

 

 대신, 조건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절터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황룡은 마을 주변에 전염병이 들면 그것을 물리쳤고, 가뭄이 오면 조화를 부려 비를 뿌렸습니다. 이렇게 근면 성실했던 황룡 덕에 마을 사람들은 근심 없이 평화로운 삶을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을을 돌보고 있던 황룡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갑자기 폭우가 내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눈병을 고치려 온양온천을 향하던 세종대왕과 그 일행이 그곳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세종대왕 일행은 오랫동안 빗길을 걸어 몹시 지쳐있었고, 그만 길을 잘못 들기까지 했죠.

 

 이를 보다 못한 황룡은 농부로 변해 세종대왕 일행을 온양온천으로 가는 길로 안내했습니다. 덕분에 세종대왕은 온양온천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죠. 하지만 황룡은 절터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하늘의 규율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황룡은 용에서 이무기로 변하게 됐고 온양온천 옆 용화리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황룡은 마을을 지킬 힘도 잃었고,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어요.

 

 온양온천에서 심신을 회복하고 한양으로 환궁한 세종대왕은 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그렇게 비가 오는 날 짐과 일행을 위해 황룡이 도와줬는데, 오히려 벌을 내리면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절터에 절을 크게 지어 황룡이 머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신하들은 절터에 웅장한 절을 지었고, 이를 본 하늘에서는 황룡을 이무기에서 다시 용으로 되돌려 절과 마을을 돌보도록 했죠. 마을 사람들은 수호신인 황룡이 다시 돌아왔다고 기뻐했고 사람들은 이 마을을 용이 돌아온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회룡리(回龍里)라, 절은 회룡사(回龍寺)로 불렀습니다.

 

 이 소문은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위해 온양온천을 찾았고 회룡사를 방문해 기도를 올리면 황룡은 병을 고쳐줬답니다.

 

 이후 3년 뒤 황룡은 하늘의 부름을 받고 승천했고, 회룡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모두 불타서 지금은 주춧돌과 석탑만 남게 됐다고 합니다.

회룡사지 삼층석탑 모습. 숲속 한편에 덩그러니 탑만 남아있다. 안성원 기자.
회룡사지 삼층석탑 모습. 숲속 한편에 덩그러니 탑만 남아있다. 안성원 기자.

[안성원 기자] 상상의 동물인 용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중에서도 회룡리 마을 전설은, 황룡의 활약을 통해 ‘애민(愛民)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온양온천을 찾아 심신을 치유한 세종대왕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생명력을 얻게 됐다. 온양(溫陽)이란 지명도 온천에서 유래된 것이며, 세종대왕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이름난 온양온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35세 때인 1432년에 풍질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서 ‘온욕(溫浴)’을 한 뒤 병이 나았다. 이에 세종대왕은 온수현(溫水縣)에서 온양군(溫陽郡)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회룡사 절터에 남아있는 석탑은 2006년 3월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또 황룡이 이무기 시절 머물렀던 용화리는 현재의 용화동으로, 온천동과 경계지역에는 세종대왕이 눈병을 치료한 우물로 알려진 어의정(御醫井)이 있다. 어의정은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4호로 지정됐다.

아산시 용화동과 온천동 경계에 위치해 있는 어의정 모습. 세종대왕이 눈병을 치료한 곳으로 알려졌다. 안성원 기자.
아산시 용화동과 온천동 경계에 위치해 있는 어의정 모습. 세종대왕이 눈병을 치료한 곳으로 알려졌다. 안성원 기자.

왕이 온천에서 쉬는 동안 나랏일을 보기 위한 임시 궁궐도 필요했다. 이렇게 만든 궁궐을 ‘행궁’이라 부르는데, 온천에 설치한 행궁은 ‘온궁’이라 불렀다. 온궁에는 다른 행궁과 달리 목욕을 하는 ‘탕실’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3차례에 걸쳐 94일 동안 ‘온양행궁’에 머물렀는데, 마지막으로 온양에 다녀온 이듬해, 병에 차도가 있어 ‘훈민정음’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온양온천은 세종대왕을 비롯해서 세조, 현종, 영조, 정조 등 조선시대 여러 왕과 왕족이 즐겨 찾았다.

온궁 중에는 세종대왕이 설치한 온양 온궁이 가장 유명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온양온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아산시에는 온양온천 외에도 도고온천과 아산온천 등 3대 온천이 있다. 도고온천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 온천 별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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