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IN충청-25편] 충남 보령시 오천면 '도미부인' 설화
왕의 시기에 눈 잃은 남편과 사랑의 도피…백제시대 열녀·정절의 표상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나무, 저수지와 바위들. 여기에는 각각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는 ‘이게 우리 동네 이야기였어?’라고 놀랄만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 지역의 전설을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로 꺼내면 어떨까? 대전·세종·충남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 주> 

개루왕의 손길에서 벗어나 재회한 도미와 부인. 안성원 기자. 

옛날 백제에는 도미(都彌)라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도미는 평민이었지만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고, 그의 부인은 절세의 미녀로 두 사람의 금실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 소문은 궁궐까지 이어져 개루왕도 듣게 됐죠. 개루왕은 도미를 불러 “무릇 부인의 덕은 정결이 제일이라 한다. 그러나 만일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누군가 좋은 말로 꾀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여자가 드물 것이다”라며 도발했습니다.
 
이에 도미는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으나, 제 아내는 죽더라도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변치 않은 믿음을 보였지요.

 

그러자 개루왕은 도미의 부인을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개루왕은 도미를 궁궐에 가두고, 신하에게 왕의 옷을 입혀 말과 종자를 딸려 보내 부인에게 보냈습니다. 가짜 왕은 부인에게 “도미와 내기해 이겼기 때문에 그대를 궁녀로 삼겠다. 오늘밤 수청을 들라”고 명령했어요. 

 

도미부인은 가짜 왕을 먼저 방으로 들게 한 뒤, 시종을 예쁘게 꾸며 자신의 옷을 입히고 대신 들여보냈습니다. 다음날 부인에게 속은 걸 알게 된 개루왕은 크게 분노했고, 도미의 두 눈을 빼 배를 태워 실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직접 도미부인을 궁궐로 불러들여 수청을 들라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때 도미부인은 “남편을 잃었으니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고, 대왕을 모시라는 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거리[月經]중이라 몸이 단정치 못하오니 깨끗이 목욕을 하고 오겠습니다”라며 위기를 모면합니다. 

 

밖에 나온 도미부인은 그길로 도망쳐 어느 강어귀에 다다랐습니다. 당장은 상황을 피했지만 왕의 힘을 피할 길이 없던 터라 막막함에 통곡을 하고 말았죠. 하늘을 원망하던 그때 홀연히 배 한 척이 물결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배에 오른 부인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 보니 어느 외딴 섬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부인은 힘겹게 풀뿌리를 캐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됐죠. 가까이 가서 보니 죽은 줄 알았던 도미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기며 그 배를 타고 힘을 다해 노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백제를 떠난 부부는 고구려 땅으로 넘어갔고, 부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과 끝까지 함께 지내며 남은 사랑을 꽃피웠다고 합니다.

보령시 오천면 일대, 설화 바탕 지명 유래 
미인도, 정절사, 도미부인솔바람길 등 관광명소

 

상사봉에 위치한 도미부인 사당 입구. 보령시 제공.
상사봉에 위치한 도미부인 사당 입구. 보령시 제공.

[안성원 기자] 충남 보령시 오천면에 내려오고 있는 도미부인(도미의처) 이야기다. 1500여 년을 걸쳐 이어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과 삼강행실도, 동국통감 등에 수록돼 있으며, 실제 오천면에 설화와 관련된 많은 지명이 남아 있다. 

오천항 인근에는 부부가 수난 전까지 살아온 것으로 전해지는 도미항(道美港)이란 작은 포구가 있고, 도미항 맞은 편에 있는 섬 빙도(氷島)는 예전에 미인도(美人島)라 불렸다. 도미부인이 태어난 곳으로 그 미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다리가 연결돼 있다.

또 이 일대에는 도미부인이 남편의 소식을 기다렸다던 상사봉(想思峰)도 있다. 특히 상사봉 중턱에 지난 1994년 지어진 정절사(貞節祠)가 있는데, 이곳에 모셔진 부인의 영정은 1996년 대한민국표준영정 제60호로 지정됐다. 정절사에서는 해마다 도미 부인의 절행과 정신을 기리는 ‘도미부인 경모제’를 올리고 있다. 

도미 부부 합장묘. 보령시 제공.
도미 부부 합장묘. 보령시 제공.

정절사 옆에는 도미 부부의 합장 묘도 있다. 성주 도씨(星州 都氏) 종친회가 2003년 경남 진해의 시조의 묘로 모셔온 도미총(정승묘)을 현 위치로 이장해 도미부인 합장묘를 조성한 것이다.

도미부인 설화를 바탕으로 충청수영 해양경관전망대까지 연결된 '도미부인 솔바람길'은 관광객들에게 가을 트래킹 코스로 인기가 높다. 오천항을 비롯해 충청수영성, 보령방조제, 빙도(미인도), 도미항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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