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IN충청-⓷] 백제시대 배경 지명설화
가뭄 해소, 마을 통합한 ‘부용·사득’ 영혼결혼식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나무, 저수지와 바위들. 여기에는 각각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는 ‘이게 우리 동네 이야기였어?’라고 놀랄만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 지역의 전설을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로 꺼내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대전·세종·충남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 주>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윗마을과 아랫마을에는 총명한 아가씨 부용이와 성실한 청년 사득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을 중간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긷다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때는 전란이 그치지 않았던 백제시대. 신라가 백제를 침략한 어느 해, 사득이는 백제군으로 징집돼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 사득이는 부용에게 이렇게 약속했어요. 

 

“곧 돌아올테니 기다려주시오. 우리 그때 결혼합시다.”

 

부용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사득이를 그리워했지만, 사득은 끝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상심한 부용은 날마다 보문산 선바위에 올라 멀리 그가 오나 내다보았지만, 헛걸음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뎌 그만 높은 산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하고 말았답니다.

 

몇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두 마을에는 가뭄이 들었고, 샘도 말라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매일 멀리 다른 곳으로 물을 길러 가야 했지요. 그러던 중,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사는 두 노인의 꿈에 부용이 나타났습니다.

 

“저와 사득 씨의 영혼결혼식을 성사시켜주시면, 마을에 물을 내려 드리겠어요.”

 

마을 사람들은 사흘 뒤인 칠석날, 마른 샘을 깨끗이 청소하고, 부용과 사득의 영혼결혼식을 올려주었습니다. 그 후 샘에서는 물이 펑펑 솟았고,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부용과 사득의 이름 첫 글자를 따 ‘부사샘’으로 부르기로 했어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물을 길러 멀리 떠나지 않았고, 두 마을 사이도 좋아져 더 이상 서로 미워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대전 중구 부사동 보문사회복지관 옆에 위치한 부사샘터와 돌탑 모습. 한지혜 기자.
대전 중구 부사동 보문사회복지관 옆에 위치한 부사샘터와 돌탑 모습. 한지혜 기자.

서양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서사를 똑 닮은 백제시대 ‘부용과 사득’의 러브스토리는 대전 중구 부사동의 지명 설화로 전해진다. 서로 사랑하던 윗마을 아가씨 부용과 아랫마을 청년 사득의 비극적인 이별을 마을 사람들이 위로해 주는 이야기다. 

부용은 현몽(現夢)을 통해 두 마을 노인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부용의 간절한 요청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마을을 화해·통합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두 사람의 이름을 따 지은 ‘부사샘’은 부사동이라는 지명, 부용로와 사득로라는 도로명으로 계승돼왔다. 마을에서는 매년 칠월칠석 때마다 보문산 선바위에서 부용을 위로하는 제성을 올린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지역 대표 민속놀이인 ‘부사동 칠석놀이’로 승화됐다. 이 놀이는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중단됐다가 광복 후 다시 명맥이 이어졌다. 1990년대 옛 형태를 되살린 뒤 1992년 중구 민속놀이로 지정됐고, 1994년에는 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지역 대표 민속놀이로 인정받았다.

부사칠석놀이 모습을 형상화한 신일여고 앞 벽화. 한지혜 기자.
부사칠석놀이 모습을 형상화한 신일여고 앞 벽화. 한지혜 기자.

신일여고 앞 골목길에는 칠석놀이 장면을 담은 벽화도 그려져있다. 부용로 41번길에 위치한 보문종합사회복지관 옆에는 부사샘터와 두 사람의 사랑을 기원하는 돌탑이 남아있다.

설화 전승 거점지인 부사칠석놀이보존회관은 지난 2007년 건립됐다. 시는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노후화된 건물 정비 작업을 마쳤다. 현재 회관은 주민 화합과 놀이 계승 등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건물 정문 양쪽에 설치된 부용과 사득 마스코트는 미술특화 학교인 신일여고 학생들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경사진 부사동 골목을 걷다보면, 못다한 사랑을 이룬 후 마을에 평안과 풍요를 가져다 준 두 청춘남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마을 탐방을 끝낸 후 보문산 행복숲길 둘레길을 따라 오르면, 전망대인 보운대에 다다른다. 설화의 시대배경인 백제시대 산성을 복원한 보문산성도 가까이에 위치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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