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정윤덕, CBS 김화영기자 연합뉴스 정윤덕기자(32)와 CBS 대전방송 김화영기자(34)는 11일 대전지법에서 판결한 ′성매매는 사회적 필요악′기사를 취재망이 소홀해지기 쉬운 주말에 기자정신을 발휘하여 특종 보도했다. 지난 7월9일 대전일보의 ′왕기 어린 곳으로 JP부모 묘소 이장′특종이래 대전지역에서 약 한달만에 올린 개가였다. 이 기사는 다음 날짜 동아일보 1판 사회면 톱 박스 및 조선, 중앙일보 사회면 사이드 톱 또는 주요기사로 다뤘다. KBS, MBC, SBS등 주요 방송사들도 보완취재를 하여 현지발 기사로
동성애에 대해 3명 중 2명이 합법적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아직도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이 전국(제주도 제외) 만 20세이상 성인 남녀 1,5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성연애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동성애 커플에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여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66.9%가 반대, 16.8%가 찬성했다. 미국의 경우 찬성이 44%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견해는 18.4%에 그쳤으며 47.2%가 동성애는 ‘양육이나 환경에 의해 길
비슷한 내용, 지루한 대기 등 개선해야 사이언스 페스티벌 2001성황 지난 11일 개막한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2001은 행사의 패턴을 지난해와 달리하면서 입장객이 몰리고 있다. 특히 지방 행사는 아무리 내용이 좋더라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뒤엎고 있어 대전 지역에 새로운 행사 문화를 만들어 주고 있다. 작년 행사에 비해 올해 달라진 점은 참가자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흥미를 유발하는 로봇 등 기초교육에 중점을 둔 행사 컨셉으로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관심을 끌어오는 내용으로 구성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중부권 최대 농산물 집적단지 큰 기대 개장 한달 맞는 노은도매시장 현장르포 ′부릉부릉′″짐이요 짐!″ ″아저씨 물건 좋아요. 한번 보고가세요″새벽시장만큼 생동감 넘치는 곳도 드물다.쉴새없이 드나드는 트럭들, 물건을 내리고 올리느라 정신없는 모습,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알아듣지 못하는 경매사들의 읊조림. 지나가는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호객소리. 이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개장 한달을 맞은 노은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찾은 시각은 새벽 2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척지척 비가 내렸다. 아직 진입로 개설공사가 완료되지
▶ 소 개 안면해수욕장은 안면도 연육교에서 영목항쪽으로 649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면 우측으로 안면해수욕장이정표가 보인다. 우측의 송림과 왼쪽은 논밭인 그 길을 1km 정도 따라 들어가면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가면 갯개가 나오고 좌측으로 가면 안면두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다.-뒤쪽의 송림과 앞쪽의 평범한 고운 모래백사장, 그리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예전에는 갯게라고 불리웠으며, 해수욕장 이라 지칭된지는 얼마 되지않았다. 백사장이 무척길고 아름다우며, 좌우측 객바위에서 조개나 게나 바지락
■ 소 개 백마강은 금강의 별칭으로 특별히 부여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 유래는 썩 유쾌하지 못한 것인데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소정방의 무용담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소정방이 부소산성을 공격할 때 안개가 자욱해 강을 건너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이 이르기를 백제의 의자왕은 낮에는 사람으로 밤에는 용으로 변하는 사람인데 전쟁 중에 계속 용으로 변해 있어 안개가 걷히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삼아 용을 낚아 올리자 짙은 안개가 걷히고 백제를 칠 수 있었다고 한다.
■ 소 개 소백산의 으뜸가는 절경이며, 영남의 제 1 폭포로 손꼽히는 이 폭포는 높이 28m로 해발 700m에 위치하고 있다.-중앙선 희방사역에서 동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희방폭포는 소백산맥의 최고 봉우리인 비로봉(1,439m)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데, 높이 28m로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 이다. 무더운 여름철, 우거지 잡목과 시원한 폭포가 어우러진 희방폭포는 일등 피서지가 되고 있으며, 폭포를 위로 하고 한구비 오르면 고용 한 정적 속에 희방사가 자리잡고 있다.-소백산영봉의 하나인 연화봉에서 발원하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천여 척이나 힘차게 우뚝 치솟아 절개있는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신비한 형상의 봉우리이다.-옥순봉은 원래 청풍군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명종초 관기 두향이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단양군으로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치 않아 퇴계 선생이 석벽에 「단구동문」이라는 글을 암각하여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한다.-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의 비경인 바, 흥지승람에 의하면 연산군때 문신 김일손도 이곳을 탐승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하였다고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한국인의 이웃을 연상케 한다. 맑은 벽계수가 용출하여 반석 사이를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골에 이르러 폭포가 되어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지니 그 음향이 우뢰와 같고 튀는 물방울이 탐승객의 옷깃을 적셔주어 금방이라도 멋진 노래나 시 한 수가 가슴을 적셔 올 듯 하다.-조선 명종조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명하였으며 그는 이곳에 소박한 초가정자를 짓고 "신선과 놀던 학은 간 곳이 없고 학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와 닿는 그런 곳이 바로 상
■ 소 개도담 삼봉은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담리 남한강 한가운데 위치한 3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명종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이 극찬한 단양8경은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등의 여덟 경승지를 가리킨다.-도담상봉은 단양8경의 상징적인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담삼봉은 충주호가 조성됨에 따라 수몰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오히려 색다른 운치를 자아내게 되었다. 세 봉우리가 서로 떨어져 물 위로 고개를 내민 자태가 매혹적인 것이다.-도담삼봉의 가운데 봉우리는 남봉, 왼
기암절벽 암형이 흡사 거북을 닮아 구봉이며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무늬를 띠고있어 구담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조선 인종때 백의재상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 하였는데, 푸른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넝쿨을 구담의 양안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이 감싸고 있어 충주호 수운관광의 최절경지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퇴계 선생은 구담봉의 장관을 보고 "벽수단산계 (푸른 물은 단양의 경계를 이루고) 청풍명월루 (청풍에는 명월루가 있는
삼선구곡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 바위는 넓이가 백여척이나 되어 마당을 이루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있어 가관이며 그 형상이 미륵같아 「불암」이라고도 불리운다.-조선 성종조 임재광 선생이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 하여 「선암」이라 명명하였는데 거울같이 맑은 명경지수가 주야장천 흐르고 있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하여「홍암」이라고도 하며 마치 신선들의 연회장과도 같다.-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어우러진 장관은 속세를 떠난 별천지이며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
속리산 일대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계곡이다. 바위 절벽과 소나무들이 빚는 경치는 한 폭의 동양화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것처럼 멋이 있다.-조선 시대의 거유 송시열이 이곳을 사랑하여, 은거했는데 다시 조정에 불려나갔다가 사임하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는 일화가 있다. 제1곡 경천벽부터 시작하여 제9곡 파천까지 6km에 걸쳐 이어지는 평탄한 계곡은 계곡을 따라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 여름철의 피서지로는 물론 봄,가을의 산책로로도 훌륭한 곳이다
임내규 특허청장 자청 지역과의 유대강화 기폭제 될 듯임내규 특허청장이 대전시립교향악단의 후원회장을 맡겠다고 자청하고 나서 지역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임내규청장은 10일 오후 대전정부청사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홍선기 대전시장, 함신익 대전시향 지휘자에게 대전시립교향악단 후원회장을 맡아보겠다는 뜻을 전했다″며 ″향후 100명 정도의 후원회원을 구성해 대전시향이 공연에만 전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현재 대전시향은 1년에 1억원도 안되는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어 운영이 상당히
변신을 위해 무던히 노력한 인물 말년에 수배로 효과는 반감 고 김옥태회장은 52년 11월 전남 신안군 압해면 가룡리에서 압회면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대전 홍익회 회장이 된후 대전으로 이사와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시절이었던 1967년 김회장은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999년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당시 만우절날 호기를 부리다가 선배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것이 계기가 되어 복싱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술회를 했다. 이때부터 그의 복싱인생은 시작되었다. 이후 대통령배 시도대항 최고선수권 3회 연속
대전체육계 표정10일 오전 김옥태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대전체육계는 차분한 속에서 애도하는 분위기다.대전시체육회는 김옥태씨가 대전복싱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대전체육 발전에 일조한 바는 인정되지만 현재 사회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별다른 애도 행사는 계획하지 않고 있다.다만 이날 오후 시신이 대전으로 내려오면 개인적으로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한다는 입장이다.전 회장의 비보를 받은 대전시 복싱연맹도 최근의 사회분위기를 감안, 드러나는 애도행사는 자제한다는 방침아래 지역 복싱인들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