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누가 ‘브랜드평판’ 순위에 열광하나⑦
브랜드&평판연구소 박민수 소장 인터뷰
‘신뢰성·객관성·과학적 측정법’ 거듭 강조
경쟁력을 갖춘 도시는 사람과 자본을 모은다. 차별화된 도시 정체성은 브랜드로 자리잡고, 도시 안팎의 긍·부정적 평가가 모여 평판을 형성한다. 도시평판은 오랜시간 켜켜이 쌓인 역사·문화적 산물이다.
지난달, 서울에 위치한 브랜드&평판연구소를 찾아 박민수 소장을 만났다. 해당 연구소는 2007년 설립한 기관으로 학계 전문가와 민간 출신 연구원이 연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가 평가한다. 도시평판을 형성하는 주체는 그 도시 안에 사는 사람과 도시를 바라보는 바깥의 사람들이다.
박 소장에게 브랜드평판에 관한 본질을 물었다. 그는 "켜켜이 쌓인 이해관계자들의 총체적 평가"라는 문장으로 평판을 정의하면서 공신력과 신뢰성을 담보로 하는 평판 분석·측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인 질문 몇 개를 던졌다. 박 소장은 간결한 답변과 함께 몇 년 전, 연구소가 낸 책 <브랜드평판 혁신 설계>(2020) 일독을 권했다. 연구자 10여 명이 저자로 참여한 전문서다.
이들은 이 책에서 다양한 도시평판 구성 지표를 제시했다. 하드웨어적 관점으론 경제적 환경(기업, 경제 수준, 취업·채용 여건), 자연·생활환경, 교육·보육·보건·의료 등 생활인프라, 문화·체육 인프라 등을 꼽았다.
최근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요건 중 하나로 ‘관계성’도 강조했다. 도시의 인적자본, 신뢰도 등이다. 시민의 리더십과 발휘 여건, 도시가 시민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지 여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이해관계자를 충분히 배려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지 여부 등이 평가 지표에 포함된다.
연구진은 시민과 투자자, 관광객과 도시브랜드 사이의 감정적 결속 강도인 애착심과 외부에 도시가 얼마만큼 잘 알려졌는지(인지도), 도시의 독특한 개성과 정체성, 랜드마크가 있는지 등도 도시 평판 구축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요소로 꼽았다.
민간기업도 모자라 공공기관과 전국 지자체까지 민간이 내놓은 도시브랜드평판 순위를 검증 없이 활용하며 열띤 홍보 경쟁을 펼치고 있다. 도시는 진정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다음은 박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
ㅡ ‘평판’이라는 것은 유형화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평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평판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장기간에 걸친 경험을 통해 형성한 입체적 평가다. ‘평하다’, ‘판단하다’라는 단어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상은 기업, 도시, 사람, 사물, 콘텐츠 등 셀 수 없이 많다. 좋고 나쁨, 잘함과 못함 등 긍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ㅡ 민간 업계에서 내놓은 ‘브랜드평판’ 순위가 홍보·마케팅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가 이 지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평판의 중요성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은 평판을 높이기 위해 어떤식이든 액션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건 평판을 분석하는 연구자의 역할도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가 객관성을 담보하는지 여부, 과학적인지, 또 신뢰도가 있는지 등 공신력을 담보해야 한다. 신뢰성이 없다면 결과는 무의미하다. 타당성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평판이어야만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ㅡ 평판은 무형의 개념이다. 객관적으로 수치화하려면 분석 방법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수치화된 평판이 공신력을 얻기 위해선 어떤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보나.
“연구소에서 삼성 이재용 회장에 대한 평판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학술적으로 CEO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인사관리능력, 리더십, 재정운용능력 등이다. 척도에 따라 설문지를 만들고, 표본을 추출해 여론조사하는 방식으로 평가했다. 표본은 연령별, 지역별, 직업별로 추출한다.
기업과 도시, 사람. 기업도 일반기업과 공조직에 대한 평판 측정 지표가 각기 다르다. 그만큼 복잡한 일이다. 객관적인 지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이고, 또 신뢰성을 얻으려면 이 지표를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ㅡ 누구나 쉽게 빅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온라인상의 데이터가 평판 분석에 유용하게 쓰이는데, 빅데이터 활용 분석에는 어떤 한계가 있나.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니는 데이터를 크롤링(Crawling: 소프트웨어 따위가 웹을 돌아다니며 유용한 정보를 찾아 특정 데이터베이스로 수집해 오는 작업)하면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그 정보를 분류해야 하는데, 온라인상에서 무엇인가를 언급하는 형태가 정형화된 패턴이 아니다. 특히 한국어로 ‘잘한다’ 등 다양한 단어가 긍정, 부정 양면적으로 쓰이는 사례가 있지 않나. 학계에선 단순 빅데이터가 아닌 고도화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분석 방식을 연구하는 추세다.”
ㅡ 민간업체가 내놓은 브랜드평판 순위가 전 분야에 걸쳐 확산되고, 또 재가공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도 우려하는 바가 있나.
“줄 세우고 순위 매기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또 평판 공개로 인해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평판을 받은 집단은 더 열심히 일하고, 평판의 영향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반대로 나쁜 평판을 받은 집단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평판 측정의 신뢰성과 객관성, 과학적 방법론이다. 연구자들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더 객관적인 방법, 고도화한 측정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또 평판 측정·활용 측면에서 왜곡하거나 악용하는 게 문제다. 이는 언론을 포함한 전체 사회 구성원이 함께 감시해야 해결 가능한 사안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