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누가 ‘브랜드평판’ 순위에 열광하나②
간판은 연구소, 실체는 경영컨설팅 업체
재주는 성심당이 부리고, 과실은 대전시가 따먹었다?
소비자나 대중, 유권자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브랜드와 평판’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수 년 간 민간과 공공, 언론이 민간 컨설팅 업체의 줄세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희일비해 온 이유다.
아이돌, 배우 팬덤은 이같은 업체의 깜깜이 집계방식에 가장 많은 의문을 제기해 온 집단이다. 트렌드 변화가 빠르고,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엔터업계에서 이 순위가 상당한 파급력을 갖기 때문.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입학생 유치에 사활을 건 대학이나 임팩트 강한 홍보 수단이 필요한 지방자치단체도 이 민간업체가 내놓은 순위를 내세워 열띤 마케팅 경쟁을 펼치고 있다.
‘5개월 연속 광역자치단체 브랜드평판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는 대전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는 매달 90여 개 분야 브랜드평판지수를 공개한다. 이와 별도로 상장기업 대상 기업브랜드평판지수,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 대상 브랜드평판지수도 각각 25개 분야, 16개 분야로 구분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법인격인 ㈜한국미디어마케팅은 서울 서초동에 사무실을 둔 민간업체다. 공개된 업체 주소지를 확인한 결과, 이 업체 사무실은 공유오피스 한편 서너평 남짓 공간에 마련돼 있다. 채용정보 홈페이지에 등재된 임직원은 총 3명.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법인의 자본금은 500만 원이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해 2~3억 원대 매출을 냈다.
연구소 측 설명에 따르면, 임직원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은 아웃소싱을 통해 활용 중이다. 사업자등록 업종은 경영컨설팅업, 소프트웨어개발·공급업이다.
실제 천안시는 지난 2022년 천안사랑카드 상생플랫폼 구축 사업 명목으로 이 업체와 4600만 원 규모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지역의 영세업체와 착한가격업소를 홍보하는 홈페이지를 구축한 사업이다. 업체의 대표자는 전 모 씨로 여성기업에 해당해 5000만 원 이하의 수의계약 체결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참여지수, 소통지수, 미디어지수, 커뮤니티지수 등의 데이터를 제시한다. 매달 수 십여 개의 제품과 기업, 인물을 줄세우기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분석 방식이나 대상, 데이터 추출 방식, 가중치 등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연구소가 매월 내놓는 자료를 보도하는 언론이 늘어나고, 브랜드와 이미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신뢰성 문제도 불거졌다. 특히 일부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조사 방식 등을 묻기 위해 연구소에 접촉했다가 컨설팅 제안을 받은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보수 인플루언서’ 구창환 소장의 이력
한국기업평판연구소를 운영해온 구창환 소장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충남 천안 출신으로 대전의 한 국립대를 졸업한 뒤 디지털신문 자동편집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를 창업해 인터넷신문 발행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젊은 창업가는 SNS 전문가로 변신했고,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 대선은 ‘SNS로 치르는 선거’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소셜네트워크 활용이 승부처로 떠오른 시기였다.
당시 새누리당은 구 소장을 당 자문위원이자 소셜지원센터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인선을 발표한 당 대변인은 “1972년생, 00대 회계학 학사, 현재 전자신문 소셜마케팅센터 부서장, 투데이코리아 미래IT전략연구소 소장, 인맥경영연구원 원장이라는 학·경력을 가지고 있는 외부인사”라는 설명으로 그를 대중에게 소개했다.
구 소장은 이 시기 유력 일간신문 1면을 차지하며 떠오르는 보수 인플루언서로 주목받았다.
그의 이름이 다시 언급된 때는 18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소위 ‘십알단’으로 불린 ‘십자군알바단’ 댓글공작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다.
십알단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위한 불법 선거운동 조직으로 판명됐다. 십알단은 이후 국정원, 군 사이버사가 이들의 글을 퍼 나르는 식으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한 ‘3각 연계’를 했다는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과 함께 다시 소환된다.
시사IN 2013년 11월 11일 <‘참 나쁜’ RT 냄새가 난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주로 글을 퍼 나른 계정에는 새누리당 선대위에 참여했던 구 소장의 계정도 있다.
과거 정치권에 몸담은 행적과 관련해 구 소장은 “10년 전 정치권에 발을 들여 고생했고, 사람들이 (당시 맡은 직책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그 이후에는 전혀 정치적인 활동을 안 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덧붙여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라는 심경도 토로했다.
기업과 엔터업계, 대학과 정부부처, 지자체까지.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브랜드평판 순위를 발표하는 날이면 전국이 들썩인다. 지자체 중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단연 대전시. 시는 5개월 연속 광역자치단체 도시 브랜드평판 1위에 안착했다. 서울, 부산보다 앞서는 순위다.
연구소 측은 대전시 공직자와 산하기관 관계자 수 십여 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디트뉴스>도 도시브랜드평판 1위에 오른 원인 분석을 요청했다. 구 소장은 성심당 언급량을 지수에 포함시킨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고, 그 배경에 자신의 ‘고향 사랑’이 있다는 점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대전시는 ‘도시 브랜드평판 전국 1위’ 성과의 배경이 투자유치, 산업단지 조성, 0시 축제, 세계적 위상 강화 등 민선 8기 시정 운영 성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주는 성심당이 부리고 과실은 대전시가 열심히 따먹고 있는 모습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