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서른일곱번째 이야기] 취임 100일 회견에서 사라진 ‘지역’
“대전의 연구․인재 개발, 전남의 발사체 산업, 경남의 위성 산업의 삼각 체제를 제대로 구축하고, NASA를 모델로 한 우주항공청을 설립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유일한 ‘지역’ 이야기다. 대전시는 곧바로 입장문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 우주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대전을 포함한 삼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다만,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삼각 체제’ 즉 ‘클러스터’의 개념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클러스터의 사전적 의미는 ‘기업, 대학, 연구소 따위가 한군데 모여 서로 간에 긴밀한 연결망을 구축해 상승효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한 곳’을 뜻한다. ‘집적’의 의미다.
대전과 전남, 경남은 물리적 거리로 보면 집적보다 ‘분산’에 가깝다. 또 ‘묶는다’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인적·물적 인프라를 전제한다. 경남이나 전남은 우주 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하는 곳이고, 대전은 클러스터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삼각 체제’라는 용어로 세 지역이 연동성이 있는 양 말했다.
게다가 소관 부처인 과기부는 전남과 경남만 우주 클러스터 대상 후보지로 검토 중으로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말은 무색해진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취임 100일 회견에서 지역 균형발전은 자취를 감췄다. 모두발언에도, 질의응답에도 없었다.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기관 이전은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회견에 앞서 배부한 100일 성과 책자에도 '지역'이나 '균형발전'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기야 공공기관 ‘개혁’에만 꽂혀 있으니 할 얘기가 있었을까. 혁신도시로 이전은 둘째치고, 공공기관 내부 문제가 더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관련 각종 위원회도 규모와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이대로라면 ‘혁신도시 시즌2’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균형발전의 ‘바로미터’이며 실질적인 행정수도를 공약한 세종시는 또 어떤가. 대통령 제2집무실은 사실상 임기 내 설치가 어려워졌다. 지역 주도의 자립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면서 지역단체장이 참석하는 제2국무회의(중앙지방협력회의)는 100일간 한 번도 안 열렸다.
인적 쇄신에 부정적인 국정철학도 걱정이다. 과거에는 일부러라도 내각을 포함한 대통령실 인사에 지역을 안배했다. 현 정부 의사결정 구조에 있는 인사들은 대부분 서울·수도권 출신이다. 인적 구성 자체부터 지역 균형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부동산 대책은 수도권 주택 공급에 맞춰져 있고,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늘리겠다고 한다. 수도권 규제 완화로 허물어지고 있는 지역의 현실을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정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국민의 뜻"이라고도 했다. 서울과 수도권 인구만 국민이 아니다. 소멸해가고 있는 지역, 그곳에 사는 국민도 다 같은 ‘국민’이다.
정부는 조만간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규모와 권한, 구체적 비전에서 균형발전 의지를 보인다면 지역민들의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국민들은 100일 동안 ‘뭘 했다’보다, 남은 임기 동안 ‘어떻게 하겠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