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행정 실험… 충청권은 지금 위험한 선택 앞에 서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 특별법안 전달식 모습. 대전시 제공.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 특별법안 전달식 모습. 대전시 제공.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가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최종안을 확정하고 특별법 연내 국회 통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도권을 견제할 초광역 경제권’,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축’이라는 거창한 수사(修辭)가 반복되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시민의 삶이 아닌, 정치의 셈법이 먼저 눈에 띈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는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이다. 현역 단체장이라는 프리미엄과 함께 이들은 통합이라는 대형 기획을 성과로 삼아 재선 기반을 다지고, 당내 입지도 확대하려는 정치적 유인을 충분히 가진다. 야당 측에서는 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충남을 통합함으로써 거대 광역단체의 정당 지형을 유리하게 재편할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이러한 흐름은 중앙정부와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있다. 2022년 출범한 부울경 특별연합은 재정 분담 이견과 협의체 구성 실패로 사실상 무산됐다. 초광역 협력을 내세운 행정안전부의 대표 정책이 좌초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일각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차원에서, 정치적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고 협조적인 대전·충남을 대상으로 성공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체장들의 정치적 유인과 중앙정부 정책 실패의 상쇄 욕구가 맞물리면서, 충청권이 섣부른 제도 실험의 장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시민 숙의 없이 통합추진협의회가 먼저 구성됐고, 공청회는 형식적으로만 진행됐다. 일부 지역 언론은 "통합이 생존"이라는 수사로 방향을 강하게 정당화하며 비판적 시각을 배제하거나 주변화하고 있다.

정부와 단체장들은 이 통합이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명분 아래 선택된 수단이 ‘행정구역 통합’이라는 구조적 방식이라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디트뉴스DB.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디트뉴스DB.

지금 세계는 경쟁력과 혁신을 행정단위의 크기에서 찾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헬싱키, 바이에른 등 세계적 혁신 사례들은 단일 광역단체가 아니라 자율과 협력의 네트워크, 분산된 책임과 권한의 분권 거버넌스를 통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대전·충남의 통합 역시 ‘경제과학수도’ ‘메가시티’ 같은 장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체적 실현 가능성과 제도 설계의 타당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구호로 덮는 허구적 거대서사의 전형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부울경 특별연합의 실패는 통합이라는 방식이 막대한 제도적 갈등과 이행비용을 동반한다는 점을 국내에서 확인시켜 준 사례다. 대전·충남 통합도 예외일 수 없다. 단체장 간 이견, 재정 분담, 지역 내 역할 배분 등 수많은 쟁점이 기다리고 있다. 민주적 정당성과 시민적 합의가 결여한 상태에서 추진된다면, 통합은 성과가 아니라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

행정통합은 단체장의 커리어나 정당의 입지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민의 일상을 바꾸는 중대한 결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숙의이며, 수사가 아니라 실증이다. 시민이 배제된 통합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제도적 시도에 불과하다.

대전충남특별시, 그 이름 아래 담긴 것은 과연 시민의 미래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의 다음 목표를 위한 발판인가. 충청권은 지금 다시 질문하고 멈춰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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