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철의 좋은 정치]
지음(知音)이라는 참 좋은 말이 있다. 열자(列子) 탕문편에 나오는 백아와 종자기 고사에서 유래한다. 둘은 춘추전국시대 이름난 거문고 연주자였다. 종자기는 백아의 연주만 듣고 그의 마음을 헤아렸다. 백아가 산을 떠올리고 연주할 참이면 종자기는 “산과 같은 연주”라고 말했다. 또 백아가 강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강물소리가 들린다”고 얘기했다. 지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진정 내 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벗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장우 대전시장은 윤석열이 헌법파괴적 내란을 일으킨 그 날 오전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근 대한민국 국회가 헌정사에 볼 수 없는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국회를 해산시켜야 할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국회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이 시장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가 폭거를 자행하고 있고 그 국회는 해산돼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그 말에 책임을 지면 될 뿐이다.
그 날 밤, 윤석열이 발표한 비상계엄 선포 담화 일부이다.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러한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윤석열과 이 시장은 지음이다. 참 좋은 말이라서 아까운데 어쩔 수 없다. 내란이 있었던 밤, 이 시장이 집에서 나오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가 이 대목에 있다고 본다.
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 지도자가 나라를 살리겠다고 나선 ‘정당한 계엄’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 이후 이어진 발언이나 이름을 올린 성명문을 보면 터무니 없는 얘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지난해 12월 3일 오전에 이장우 시장은 “국회해산”을 언급했고 반나절 뒤 윤석열은 “예산 폭거”, “반국가 행위”라면서 여의도에 헬기를 띄우고 707특임대 등 군대를 보내 국회를 무력으로 해산·무력화 시키려고 했다.
이 시장은 새해 벽두부터 또 윤석열과 비슷한 언행으로 입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언론이었다. 이 시장은 지난 6일 시청 기자회견에서 대전문화방송(MBC) 취재진 질문에 “엠비씨는 그런 얘기하면 꼭 왜곡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엠비씨 질문에는 답을 안하겠다. 답하면 왜곡할 건데 답하면 뭐합니까. 안 하는게 낫지”라고 공개된 자리에서 기자를 면박 주고 언론사를 조롱했다. 질문을 봉쇄했다.
윤석열은 지난해 8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77번 질문을 받는 동안 MBC와 JTBC에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2022년에는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익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은 불편한 질문을 하는 기자·언론사에게 질문 기회를 주지 않고 자기 주변에 접근을 제한하는 형태로 취재를 봉쇄했다.
반면 이 시장은 처참한 언론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취재를 막았다. 질문을 회피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자와 언론사를 공격했다. 시장 지위와 위력이 가득한 시청 기자회견장에서 정당한 기자 질문을 폄훼했고 해당 언론사를 매도했다. 언론을 대하는 거친 성정과 옹졸함이 윤석열을 꼭 닮았다.
윤석열은 지난해 국회 개원식, 시정연설을 불참했다. 헌정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22대 국회 개원식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없이 진행됐다. 시정연설도 11년 관례를 깨고 국무총리를 대신 세웠다.
윤석열은 “박수 그냥 한두 번만 쳐주면 되는 건데, 악수도 거부하고 야유도 하고 ‘대통령 그만두지 여기 왜 왔어요’ 뭐 이런 사람부터. 이거는 좀 아닌 거 같습니다”라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국회의원에 버럭한 이장우 대전시장 “의원실에 211번 찾아갔다”’
지난해 11월 대전시와 지역 국회의원간 조찬 간담회를 보도한 한 언론 헤드라인이다. 시와 국회간 소통 부족 지적에 이 시장은 개별 의원실 방문횟수를 일일이 열거하며 총 211번 방문했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앞서 9월에는 기자실을 찾아 지역 국회의원을 향해 예산확보 실명제라는 정체불명 제도를 해야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엄포’라는 표현은 사견이 아니라 관련 기사 첫 부분이다. 예산확보 실명제라는 것은 대전시가 예산철 국회의원을 관찰·평가해 줄 세우겠다는 근본 없는 제도로 읽힌다.
윤석열과 이 시장은 “나는 온전히 잘하고 있는데 국회가 문제다”라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정확히는 민주당이 문제라는 얘기다. 윤석열에게 국회는 박수 몇 번 안쳐주면 나갈 가치가 없는 곳이다. 이 시장에게 국회는 개별 의원실 방문 숫자 세고 겁박하면 되는 곳이다.
국회의원 예산확보 실명제라는 근본 없는 기이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엄포 놓으면 되는 곳이다. 본인처럼 국민에게 선택받은 선출 권력, 국회를 한없이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말없이 나누고 있다. 둘은 지음이 분명하다.
“말이 많네. 당에서”
윤석열은 명태균과 통화 중 김영선 공천을 요구했지만 당에서 말을 잘 듣지 않고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특정인 낙하산 공천, 불법적 공천개입을 일삼으면서 오히려 당을 문제 삼는 태도.
본인은 온전히 소임을 다하고 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국회나 언론사를 폄훼하고 매도하는 성정. 윤석열과 이 시장은 똑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