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제2의 윤석열’ 막으려면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윤석열의 비상계엄 ‘친위쿠데타’를 지켜본 국민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은 예산삭감, 검사와 관료에 대한 탄핵 등 야당의 폭주가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라고 밝혔지만,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폭력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워낙 비상식적 결정이기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지지율 추락, 김건희 특검 통과 가능성, 명태균 황금폰 폭로 가능성 등으로 벼랑 끝에 선 정권이 ‘탄핵’을 기정사실로 보고 명운을 건 도박판을 벌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심지어 지나친 음주에 의한 판단력 상실, 극우 유튜버에 경도된 이성의 결여, 공감 능력 부재 등으로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의학적, 심리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 아니었느냐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인간 윤석열의 판단과 결정이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특이성을 지니고 있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란 어렵다. 그가 보통의 국민보다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대통령’이었기에 더 무지하고 무능하며 무책임하게 느껴질 뿐, 그가 행했던 폭력과 유사한 형태의 ‘연성 친위쿠데타’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위쿠데타’는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측이 더 큰 권력을 얻거나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벌이는 쿠데타를 뜻한다. 이른바 ‘가진 자의 폭력’이다. 윤석열처럼 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시키려 한 시도가 전형적 ‘친위쿠데타’의 유형이라면,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이 권한을 남용해 소수자와 약자를 억압하려는 행위 또한 본질적으로 ‘친위쿠데타’라고 볼 수 있다.

약자에 대한 폭력 ‘연성 친위쿠데타’

이와 같은 ‘연성 친위쿠데타’는 선출 권력이 일방적 권한을 행사하는 자치단체, 대주주 오너가 지배하고 있는 기업,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 심지어 사회단체나 언론사, 정당 등 외형상 공익을 추구하는 집단에서조차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비판과 저항은 늘 ‘연성 친위쿠데타’ 앞에서 좌절을 맛보기 일쑤였다.

폭력의 전염성 때문일까. 이 정부 들어 윤석열이 검찰과 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동원해 행했던 정적과 비판 세력에 대한 탄압, 방통위 등을 통한 KBS 장악 · YTN 민영화 · MBC 배제 등 언론탄압,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에 대한 악마화, 복지와 평등에 대한 적개심 등은 전국 곳곳으로 스며들어 ‘연성 쿠데타’를 부추겼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연성 쿠데타’에 분노를 쌓아갔다. 이번 윤석열 비상계엄 ‘친위 쿠데타’에 대해 절대다수 국민이 즉각적으로 저항하며 놀라울 정도의 연대로 단 11일 만에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이상 폭력에 의한 억압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은 쌓아 온 분노를 일시에 폭발시킨 ‘트리거’가 됐다.

대통령은 탄핵 됐지만, 모든 폭력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도 반지하 방에서, 또 땀 흘려 일하는 일터에서 약자의 죽음은 멈추지 않았고, 죄 없는 젊은이들이 이태원 거리에서 숱하게 생명을 잃었다. 책임질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았고,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는 핍박받았다.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많은 국민은 아직도 궁금하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비판과 저항을 폭력으로 억압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 주변의 많은 ‘연성 친위쿠데타’ 세력 중 한 명이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그의 내면을 좀 더 일찍 간파하지 못하고 권력을 부여했던 점은 두고두고 뼈아픈 실수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교훈도 남았다. 주변의 ‘연성 쿠데타’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또 폭력의 전염성을 경계해야만 ‘제2의 윤석열’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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