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그날 밤 “명령수행이 제한된다”고 말했어야

취임 후 야당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온 윤석열 대통령. 급기야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의 후폭풍은 탄핵 정국으로 귀결됐다. 황재돈 기자. 
취임 후 야당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온 윤석열 대통령. 급기야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의 후폭풍은 탄핵 정국으로 귀결됐다. 황재돈 기자. 

12·3 내란 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 증인으로 등장한 사령관들의 답변 태도가 구설에 오르고 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을 제외한 대다수 장성들이 “답변이 제한된다”는 이상한 언어로 증언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주로 언론을 상대하는 군 관계자가 기밀·보안상 이유를 들어 답변을 거부할 때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다. 국방부 대변인이나 각 군 공보장교 등이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온 게 사실이다.

“답변하기 어렵다”거나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의 화자는 ‘나’다. 내 의지에 따라 답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군사기밀보호법 등 법률, 그 밖의 보안규정, 상급자의 지시 등 외부적 요인 때문에 내가 답을 할 수 없다는 ‘책임 회피성’ 언어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즉각적인 시민들의 저항, 국회의 신속한 해제 요구권 발동으로 무력화된 지 2개월여. 구속 당시, 체념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사실을 털어놨던 장군들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국회 내란규명 국정조사 특위,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사령관들은 수사 과정에서 이미 본인이 털어놓은 사실을 확인하려는 국회의원이나 헌법재판관 질문에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로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형사소추된 피의자 신분임을 이유로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침탈 현장 지휘관으로 양심고백에 나섰던 김현태 707특임단장도 사뭇 태도를 바꿔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로 자기방어에 나섰다. 결국 이들 ‘답변이 제한된’ 이유는 군사기밀이나 보안규정 때문이 아닌 ‘방어권’ 때문이었다. 사령관들은 향후 재판과정에서 말을 바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김 단장의 경우 형사소추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목적이 농후해 보인다.

물론 진술거부권은 비록 군인 신분일지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 권리’다. 그 권리행사를 누구도 제약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총칼로 국민의 기본권, 심지어 일부 진술과 증거에 따르면 타인의 생명까지도 빼앗으려 했던 내란범 피의자가 자기 방어권 행사를 이유로 진실을 감추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할 숙명을 가진 ‘군인’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백번 양보해 내란 우두머리의 명령으로 동원됐을지라도 충성의 대상인 국민을 상대로 총칼을 들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진실을 밝히는데 협조한다면, 형사처벌과 별개로 ‘명예’만큼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이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다소의 어눌함이 있지만 곽 전 사령관의 입에선 단 한 번도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반 병사로 병역의무를 마친 경우라면, 별 3개 사령관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전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민국 군 체계에서 별 3개 사령관은 그만큼 초월적 존재다. 그런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장성들이 ‘자아’가 없는 화법 “답변이 제한된다”는 말로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420여년 전 조선의 사령관은 임금의 명령에 즉각 따르지 않고 고초를 선택했지만, 결국 부하와 민중을 구하고 역사에 길이 남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박정훈 대령 역시 부하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으로 상관의 불법 지시를 따르지 않아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를 ‘참군인’으로 평가하는 국민이 많다.

과거와 현재, 어디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사령관들. “제한된다”는 말을 그렇게 남발할 것이라면, 12월 3일 그날 밤 당신들은 명령을 하달하는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에게 “명령수행이 제한된다”고 말하며 부하와 국민을 지켰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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