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철의 좋은 정치]

국무회의 모습. 대통령실 제공.
국무회의 모습. 대통령실 제공.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곳이다.’

뮤지컬 <웃는남자>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웃는남자>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무대극이다.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입이 쫙 찢어진 기형적 모습을 가진 주인공(그윈플렌)이 견뎌야했고 치러야했던 잔혹한 대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무대극의 유명한 넘버 <그 눈을 떠> 도입부이다.

“경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 밑바닥에서 왔습니다”

“누가 제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여러분들 같은 귀족들의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절 구하고 살린지 아십니까”

“바로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한 뼘 관저에서 차벽을 치고 철조망을 널고 겁에 질려 있는 윤석열은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나왔다. 아홉 번 도전 끝에 소위 ‘사시 패스’ 대업을 이뤘다. 검사가 됐다. 대한민국 최고시험은 훗날 반헌법적 비상계엄, 내란 수괴를 여덟 번 걸러 냈지만 최종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

그는 남들보다 늦게 입직했지만 그것을 기반 삼아 형 노릇을 했다. 줄을 세우고 조직 내부에서 입지를 넓혀갔다. 그러다가 2013년 국정감사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새빨간 거짓말로 일약 국민검사 입지에 올랐다.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잘 나갔다. 급기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 지금은 반헌법적 내란으로 나라를 절단내고 있다. 흡사 마약 카르텔 보스처럼 사병을 휘둘러 국법을 박살 내고 있다. 단언컨대 그는 나라 걱정 1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 자리를 시공을 초월해 두 번이나 지낸 ‘대한민국 관료, 전설의 레전드(?)’ 한덕수도 대한민국 최고학벌 KS(경기고-서울대)를 나왔다. 제8회 행정고등고시를 패스했다. 입직 후 대통령비서실 주요 보직을 섭렵했다. 국무조정실장, 재정경제부장관, 주미대사 등 남부러운 커리어를 쌓았다.

말년에 서울대 후배이자 사법고시 시험지를 아홉 번이나 풀어본 윤석열을 대신해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까지 올랐다. 한덕수 역시 나라를 절단내는 일들을 일삼다가 지금은 내란공범으로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직무대행, 대한민국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이른바 포캡(네 개의 모자)을 쓰고 있는 최상목도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나와 제29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총무처 수습사무관을 시작으로 재정경재부, 기획재정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비서관을 거쳤다. 그는 윤석열 내란이 일어나자마자 “나는 반대했다”고 손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각 방송국에 달려가 내란 위험을 알리지 않고 어디 밀실에서 F4회의인가, A4회의인가를 열었다고 한다. 그 회의가 내란을 막기 위한 회의인지, 내란에 가담키 위한 행위인지 조만간 수사로 밝혀질 예정이다. 지금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시급한 일들은 유기하고 있다.

경제가 중요하다면서 정작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내란종식에는 뒷짐지고 있다. 내일 모레 집에 갈 미국 바이든 정부 국무장관을 붙잡고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다. 불법을 일삼고 있는 경호처를 통제하지 않고 자기 SNS 프로필을 다듬는 행위로 소일하고 있다.

마지막 약간 결은 다르지만 한 명 더 소개하겠다.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나와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제27기 사법연수원을 우수하게 수료했는지 모르겠지만 부산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로 공직을 마쳤다. 이후 변호사, 울산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를 하다가 지난 5월 제2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됐다.

그는 이후 ‘존재하되 수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신조로 조직을 이끌어왔다. 대통령과 주변 범죄를 가볍게 여겼고, 그 범죄에 스스로 압도당해 겁을 먹었다. 불행하게도 재직 시기, 윤석열은 내란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다.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대한민국 국민이 체포영장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행기한은 일주일이었고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엄정한 법 집행을 기대하며 날짜를 헤아렸다. 그러나 그는 ‘존재하되 수사하지 않는다’라는 신조를 일관되게 지켰다. 그는 억울하게도 윤석열과 달리 큰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국민의 큰 지탄을 받고 있다. 시험 보는 것에만 능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험에는 무능했다.

서희철 전 법무부장관 비서관
서희철 전 법무부장관 비서관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나와 성공이 보장된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왜 모두 이 지경일까.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됐을까. 그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절단 냈다. 그 파괴를 방치하고 이용하고 있다. 또 그 파괴를 수습할 수 있는 기회에 눈 감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소위 리더들과 지도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이 저 자리에 갈 수 있었던 첫 번째 관문이자 만능키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의심하고자 한다. 수많은 시행과 착오가 누적된 가장 완결성 있는 인재등용문이라는 이 제도를 국민이 끝까지 믿어도 될까.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오동운과 같은 시험기술자들의 낙원으로 남아야 할까.

12·3 내란은 소위 대한민국 시험기술자의 나약한 밑천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이다. 앞서 네 명 정도를 언급했지만, 내란 중에 권력을 훔치려 했던 한동훈 전 검사, 국무회의에 참석했거나 나오지 않았던 국무위원들, 무법자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관저로 달려간 국민의힘 의원들,윤석열을 두둔하는 지방정부 수장, 내란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 경찰대학 출신 경찰 간부들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시험기술자들이다.

그들은 시험에 최적화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시험을 잘 봐 출세했다. 그들 노력을 폄훼하진 않겠다. 다만 그 시험기술이 제대로 된 인식과 판단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 나라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시험기술자들이 만들어 놓은 혼란과 난장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불특정다수 국민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남태령, 헌법재판소 앞, 한남동에서 엄혹한 추위를 불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바보 같고 사악한 시험기술자들이 벌려놓은 난장을 수습하기 위해 생업을 제쳐두고 거리에 앉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기술자들은 부끄러움도 반성할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 매섭게 흔들리는 눈발 속에서 은박망토를 두르고 거리에 앉은 국민의 진심을 날조하고 호도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뮤지컬 <웃는남자> 넘버 <그 눈의 떠> 가사를 덧붙인다.

“경들, 부족함 없이 다 갖춘 분들. 경들, 나 여기 진실을 외칩니다”

“간청드리고 연민에 호소하오. 늦기 전에 세상을 돌아봐”

“그 눈을 떠, 지옥 같은 저 밑바닥 인생들. 그들이 견뎌야 할 또 치러야 할 잔혹한 대가”

“그 눈을 떠, 맘을 열고 증오와 절망 속에 희망까지 죽어가. 눈을 떠봐”

시험기술자들의 낙원은 평범한 국민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곳이다. 시험기술자들에게 눈 좀 확 뜨고 시험지 말고 세상을 돌아보길 권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