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부담만 강조…공동체 유지 비용은 외면
충남 부여·청양·서천·예산 시범사업 유치 열의
도지사 '반대 원칙' 입장에 지자체 '난감'

김태흠 충남지사. ;김다소미 기자. 
김태흠 충남지사. ;김다소미 기자. 

김태흠 충남지사가 1일 기자회견에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과 관련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정 부담과 절차적 문제, 지자체 간 갈등을 이유로 들며, 나아가 소비쿠폰 등 ‘보편적 복지’를 “공산주의·배급주의”에 빗대 전면 부정했다.

그러나 김 지사의 주장은 단순한 예산 논리를 넘어, 한국 복지국가가 쌓아온 보편 복지 체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미 무상급식·아동수당·기초연금 등 보편 제도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착했다. 김 지사가 이를 ‘포퓰리즘’으로 단정한 것은 철학적·정책적 차원에서 논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시골에도 부자가 많다”…보편 복지 전면 부정

김 지사는 이날 오전 도청 브리핑룸에서 “왜 이 사업을 행정안전부가 주관하지 않고 농림축산식품부가 맡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사업을 희망한 청양이나 부여도 농어촌 관련 직종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시골에도 부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군민에게도) 월 15만 원씩 준다며 지방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국비 40%를 제외하고) 지자체에 60%를 부담시킨다고 한다. 충남에서 부여, 청양, 서천, 예산이 유치하려 하는데, 4개 군이 모두 선정되면 연간 도비 1157억 원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보편 복지의 본질인 ‘부자도 함께 받는다’를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편 복지는 낙인 방지, 행정비용 절감, 제도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장치다. 복지를 비용으로만 바라보는 전형적 선별주의 논리에 가까워 보인다.

“절차·갈등 문제” 주장…정치 프레임에 갇힌 해석

김 지사는 “근본적으로 절차에 문제가 있다. 각 시도에 한 지자체를 선정했어야 하는데 전국에서 6개 지역을 한다면 길들이기 하는 것도 아니고… 충남 4개 군이 공모를 해도 하나도 안 될 수 있다. 지자체 간 갈등만 불러오는 것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은 군 지역에도 잘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런 사람들까지 1년에 180만 원씩 주는 정책은 올바르지 않아서 반대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농어촌 기본소득은 갈등이 아닌 연대를 전제로 한다. 특정 농민만 선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 공동체 전체를 대상으로 삼아 지역경제 순환과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려는 설계다. 김 지사의 ‘갈등 조장’ 프레임은 제도의 취지를 축소·왜곡한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지사는 “보편적 복지보다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선택적 복지를 해야 한다. 없는 사람에게 촘촘하고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 도지사로서 철학과 소신에 따라 (기본소득을) 동의할 수 없다”며 “이 정책은 대한민국을 갈등으로 몰아갈 수 있고, 지방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원론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1970~80년대 개발국가 시절의 복지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고, 그 위에서 취약계층 지원을 더 두텁게 하는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김 지사의 ‘선택적 복지’ 강조는 시대착오적 발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소비쿠폰까지 “포퓰리즘”…정책 취지 외면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해서도 김 지사는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소비쿠폰이 가뭄의 단비라고 말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전 국민이 단비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나는 소비쿠폰 안 받았다. 양심상 월급이 천만 원 가까이 되는데 소비쿠폰 받아도 되겠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써야 하지만, 돈 많은 사람도 현금으로 지원받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공산주의와 배급주의로 가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공동으로 케어하자는 의미에서 복지가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비쿠폰은 개인 지원이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설계됐다. 김 지사의 시각은 정책 취지를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다. 선진 복지국가들이 보편 제도를 기본 틀로 삼고 선택적 지원을 병행해 온 구조와도 배치된다.

농어촌 기본소득의 철학적 목적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다. 인구 감소·고령화·공동체 붕괴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농촌 소멸을 막기 위한 안전망 실험이다. 특정 농민을 선별해 지원하는 농업 보조와 달리, 지역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해 농촌이라는 생활 공간을 지탱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정책의 철학이다.

보편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것은 이 맥락을 외면한다. 포퓰리즘은 단기적 인기 영합에 불과하지만, 기본소득은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장기적 제도 실험이다.

김 지사의 발언은 한국 복지국가가 지향해온 보편 복지 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농어촌 기본소득을 포퓰리즘으로 낙인찍었지만, 정작 제시한 대안은 1970년대식 선별주의 복지에 머물렀다.

보편 복지를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언어는 이미 국제 사회에서 폐기된 낡은 개념이다. 지금 농촌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프레임이 아니라, 농촌 소멸을 막고 삶의 기본선을 보장할 구체적 정책 해법이다.

한편 농식품부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정책 취지를 왜곡할 수 있는 낮은 국비 비율(40%)로 전국 지자체에 혼란을 불러 오고 있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지난달 29일 군에서 열린 사업 공청회에서 "정부가 최소 70% 이상을 지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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