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책임자 부재와 뒤늦은 담화문

이장우 대전시장이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다음날까지 청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당일 행적을 설명하고 있는 이 시장. 지난 11일 대전MBC 보도 화면 갈무리.
이장우 대전시장이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청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당일 행적을 설명하고 있는 이 시장. 지난 11일 대전MBC 보도 화면 갈무리.

한밤중 기습적으로 선포된 비상계엄. 144만 대전시민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시정 최고 책임자가 자리를 비웠다. 다수의 간부 공직자가 가족의 걱정을 뒤로하고, 청사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동안, 시장은 안락한 집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민선8기 출범 후 “오직 시민만 바라보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겠다”고 거듭해 강조해온 각오가 무색한 모습이다.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중 비상계엄 선포 당일 밤 또는 새벽 청사로 출근해 긴급 회의 등 직접 대응에 나서지 않은 단체장은 이장우 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유일하다. 나머지 15명 시·도지사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시·도민 안전과 혼란을 막기 위한 긴급 회의를 주재했다.  

이 시장이 공식 입장을 낸 건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인 지난 4일 오전. 그는 담화문 발표 직후에도 “비상계엄 선포에 동조하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행정 권력도, 입법 권력도 절대로 남용돼선 안 되며 제한적으로 절제돼 사용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헌법을 준수하며 정쟁을 중단해야 한다”며 사태의 책임 소재를 국회로 돌리는 듯한 발언으로 뭇매를 맞은 것. 

특히 이 시장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인 3일 오전 확대간부회의 석상에서도 민주당 주도의 예산삭감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국회를 해산시켜야 할 만큼 최악의 상황”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과 이 시장의 인식이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신의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 이 시장이 자신을 함축해 표현하는 문구다. 그는 지난 9월 열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포럼 초청 강연 차 서울을 방문해 “정치는 신의가 중요하다”며 “은혜를 입은 사람 등에 칼 꽂은 사람치고 잘 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 탄핵 직전 최고위원을 했다. 탄핵해선 안 될 분이셨다”며 “제일 먼저 칼을 꽂은 게 유승민 아닌가. 그런 사람이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 합당하느냐"고도 질타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별개로 대전을 포함한 충청권 민심은 이미 돌아선 것 같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507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즉시 하야 혹은 탄핵으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74.8%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보면, 즉시 하야·탄핵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광주·전라(83.9%)가 가장 높았고,  대전·충청·세종(79.4%)이 두 번째로 높았다. (무선 97%, 유선3% 자동응답 방식, 응답률 7.6%). 충청권 시민 10명 중 8명이 대통령 즉시 퇴진에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신의와 배신은 정반대 뜻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과 정치인 출신 단체장이 생각하는 신의의 대상은 사뭇 다른 것 같다. 공천을 준 당과 같은당 집권 대통령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일이 때론 유권자인 시민을 배신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걸 보면 말이다.

비상계엄이 빠른 시간 내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대전시민은 무시무시한 운명에 놓였을 것이다. 시국선언에 나선 대학교수와 학생들, 처단 대상이 된 의료인과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 온 지식인, 나아가 무고한 시민까지.     

엄중한 비상 상황, 시장이 진짜 신의를 지켜야 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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