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개척자들의 도시' 진짜 의미
‘52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 옛 대전부청사’.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 누리는 다중복합문화공간’. 대전시가 440억 원을 들여 근대건축물 매입·복원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약속과 최초 활용 계획이다.
이장우 시장이 지난 6월 미국 국외출장 중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유치 제안에 나선 지 5개월 여 만에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고급형 특수매장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는 현재 미국 시애틀과 뉴욕, 일본 도쿄, 이탈리아 밀라노 등 세계 6곳에서 운영 중이다.
“시가 가진 건물을 저렴하게, 장기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 시의 전략이었다. 결론은 불발.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이 꼽힌다. 스타벅스코리아 측은 시에 이미 고급매장 적자가 크고, 미국 본사의 허가가 있어야 하며 내부적으로 로스터리 매장 증설을 중단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실제 스타벅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올해 3분기 연속 실적 적자, 주당순이익 25% 감소. 영업이익률은 3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양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 매출 감소 폭이 주요 이유다. 미국 시장 3분기 매출 감소폭은 전년동기 대비 10%, 중국 시장 감소폭은 14%에 이른다. 심각한 경영난 속에 이례적으로 올해 전체 실적 전망도 내놓지 않았다.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 외신과 국내 언론, 경제·금융시장에서 이미 특이점이 포착됐지만, 시는 지난 5개월 여 간 스타벅스에 공을 들이며 행정력을 쏟았다. 도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근대건축물 활용에 앞서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섣부른 접근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뒤바뀐 주인공, 개척자들의 도시 진짜 의미
미국 대형 커피체인점 스타벅스가 주목받으면서 최초의 시청사이자 옛 대전부청사의 역사적 가치, 잠재력은 밖으로 밀려났다. 주객이 전도된 셈. 이장우 시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화제성으로 인해 원형 복원 사업의 본질이 묻힌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공공은 세금을 들여 복원한 문화유산을 시민에게 돌려줄 책무가 있다. 세계 7번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을 유치하겠다는 선언에도 지역사회가 우려 섞인 눈길을 보내온 이유다.
일반 대중을 위한 문화예술의 장, 청소년과 서민을 위한 착한 영화관, 지역 상공인의 뛰어난 제품을 홍보하는 전시장, 분단과 해방의 아픈 단면인 미군정청까지. 쓰임의 역사를 톺아보면, ‘값비싼’ ‘미국’의 ‘대형’ 글로벌 체인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
대전이 아니면 빵을 팔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향토기업인 성심당과 미국 스타벅스를 콜라보하겠다는 생각도 의문을 자아내긴 마찬가지다.
‘개척자들의 도시’. 시가 대전을 대입해 최근 밀고 있는 은유다. 개척자의 국어사전 뜻은 ‘거친 땅을 일구어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드는 사람’. ‘새로운 영역, 운명, 진로 따위를 처음으로 열어 나가는 사람’이다.
대전 원도심에는 지역 1세대 로스터리 카페와 정통 이탈리아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오래된 매장,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핸드드립 카페까지, 스타벅스 커피보다 맛있고 격조 높은 공간을 제공하는 보석같은 매장이 곳곳에 있다.
도시재생 등 문화 기획 역량이 뛰어난 청년들과 스타트업, 서울살이 중인 대전 출신 기획자들까지. 민간 공모나 참여를 통해 시가 공공성과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개척자들의 도시 저력은 밖이 아닌 안에서 나온다. 이미 쌓아놓은 공든 탑에 기대 지역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문화 행정은 개척과는 거리가 멀다.
관련기사
- ‘스타벅스 유치 실패’ 옛 대전부청사 활용 원점 회귀
- 대전시 스타벅스 로스터리 리저브 유치 '도마위'
- 대전시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 유치 ‘먹구름’
- 옛 대전부청사에 스타벅스? “상업성·공공성 신중 검토”
- ‘쓰임의 역사’ 옛 대전부청사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
- 대전시의회 "옛 대전부청사 활용에 시민의견 수렴" 당부
- 옛 대전부청사 연구자가 본 소비와 정체성 그 사이
- 오락가락 대전부청사 활용법, 이젠 스타벅스까지?
- 民 "대전부청사 스타벅스 유치 실패, 시민 불신 키워"
- 김제선 "옛 대전부청사 시민문화공간 활용 환영"
- “시장님 브리핑 이후 보도”..대전시 고위간부 방송법 위반 논란
- '1937년 그 시절' 첫 대전시청사 내부 원형 첫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