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레 동안 주마간산식 터키여행을 마치고, 터키 서남쪽의 체스메(Cesme) 항구로 이동했다. 체스메에서 그리스 아테네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한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 있는 터키에서 그리스는 북쪽에서 육로로도 갈 수 있지만, 터키의 남부지방을 여행한 터라서 지중해를 건너가는 것이 가깝고 편리하기 때문이다.우리가 장장 10시간 동안 크루즈를 타고 건너갈 지중해(Mediterranean Sea)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삼 대륙 사이에 있는 육지 속의 바다로서 다양한 민족이 교역하고, 부딪히면서 발전해온 서구 문명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터키는 북쪽에 흑해, 남쪽으로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 사이로 마르마라해에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다.에게해 연안에 있는 도시 데니즐리(Denizli)는 터키 남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데니즐리주의 주도(州都)이다. 데니즐리에는 약 6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셀주크튀르크 시대의 옛 사원과 분묘들이 있는 고대도시이다.데니즐리는 북쪽으로 약 20㎞쯤 떨어진 멘데레스 계곡에 석회성분의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 파묵칼레(Pamukkale)가 있어서 더욱 유명한데, 터키어로 파묵(pamuk)은 목화(木花), 칼레(k
에페소 고대 유적에서 북동쪽으로 약 2km가량 떨어진 셀추크(Seljuk, Seljuk)에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이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와 티탄 족의 여신 레토(Leto)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로 태어나서 아폴론은 태양신이 되었고,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 되었다. 아르테미스는 순결과 정절의 상징이었으며, 활의 명수로서 사슴 사냥을 좋아하는 사냥꾼으로 표시되고 있다.그래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이마에 반달 모양의 장식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로마 시대에
목재 건축물이 대부분인 우리와 달리 고대 그리스는 대리석 건물인데, 대리석 돌기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했다.대리석 돌기둥은 몸(柱身)· 기둥 받침(柱礎)· 기둥머리(柱頭) 등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도리아식(Doria)→ 이오니아식(Ionia)→ 코린트식(Corinth)으로 바뀌었다.도리아식은 장중하고, 이오니아식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코린트식은 화려하다. 즉, 도리아식은 홈파기로 파낸 기둥을 주춧돌 없이 직접 땅 위에 세웠으며, 기둥의 윗부분인 기둥머리도 아무런 장식이 없이 단조롭다.BC 5세기 중엽 아테네의 파
에페소 시내에서 약 6㎞ 떨어진 에페소 유적은 1859년 영국의 건축가이자 고고학자인 우드(J.T.Wood: 1821~1890)가 원형극장(Efes Theatre)을 발굴하면서 시작되었다.1858년 터키를 여행하던 우드는 에페소 유적을 둘러본 뒤, 대영박물관의 후원을 받아 원형극장과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을 발굴했다.그 뒤를 이어 1895년 오스트리아 고고학회의 후원으로 아고라(Agora)와 켈수스 도서관 등을 발굴했는데, 찬란했던 에페소 유적은 현재에도 발굴작업 중이다.따라서 대체로 BC 6세기에 건축된
세계 문명을 주도한 그리스와 아테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바탕이 되었는데, 아시아와 유럽이 사이에서 교통로가 되었던 오늘날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Asia Minor)도 그리스가 차지했다.터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은 내륙에서의 카파도키아가 그러했듯이 서남쪽 해안에 있는 도시 에페소(Ephesus)도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BC 1044년경 건설되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아테네의 왕 코드로스(Codrus)의 아들 안드로클로스(Androclus)왕자가 ‘멧돼지와 물고기를 만나는 곳에 도시를 건설
그리스 로마시대에 ‘해가 뜨는 동방’을 의미하는 아나톨리아(Anatolia) 지방은 소아시아( Asia Minor)라고도 불렀다.오늘날 대부분 터키의 영토인 아나톨리아 지방은 북쪽으로 흑해, 남쪽으로 지중해, 서쪽은 에게 해에 둘러싸인 반도(半島)이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역이어서 일찍부터 동서양 세력의 충돌이 빈번했다.아나톨리아에서 대륙으로 통하는 동북쪽 고원지대에는 카파도키아(Cappadocia)가 있는데, 카파도키아란 터키어로 ‘좋은 말(馬)이 있는 곳’ 혹은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라고 한다.이곳에는 300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동남쪽으로 약 320km 떨어진 내륙의 고원지대이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거리가 326㎞이니, 대강 짐작이 될 것이다.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지중해가 세계의 중심이었고, 지중해 건너 아나톨리아(Anatolia) 지방을 '해가 뜨는 동쪽'이라고 하여 소아시아(Asia Minor)라고 했는데,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지방의 중앙 고원에 있다.터키어로 ‘좋은 말이 있는 곳’ 혹은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라는 의미인 카파도키아는 끝없이 겹쳐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향해서 동남쪽으로 약 2시간을 버스를 타고 가면, 거대한 소금호수 투즈굘(Tua gőlȕ; Tua lake)이 있다.터키는 지중해, 흑해 등 큰 바다 사이에 돌출한 아나톨리아 반도의 지형상 융기로 형성된 소금호수가 많다. 가장 큰 소금호수는 터키의 동부에 있는 반 호수(Van Gölü)로서 약 500㎞에 이르는 호수에는 4개의 작은 섬이 있으며, 그중에 악다마르 섬이 가장 유명하다.앙카라에서 카파도키아 방향으로 약 150㎞ 떨어진 고속도로휴게소 주변의 투즈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도 중심지인 앙카라 중앙역(Ankra Gari)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한국공원(Ankara Kore Şehitleri Anıtı)이 있다.한국공원은 서울시가 1971년 8월 앙카라시와 자매결연을 한 후, 터키가 6·25·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목숨을 바친 희생자들을 기리며 조성한 공원이다.서울시에서는 1973년 11월 터키공화국 수립 50주년에 맞춰서 이곳에 한국공원을 조성하여 앙카라시에 헌정했는데, 매년 6월 25일 터키주재 한국대사관과 터키 참전용사협회에서 6·25 기념행사를 개최하
이레 동안 이스탄불 여행을 마친 뒤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 향했다. 앙카라는 오스만제국이 1차대전에서 패하여 해체되자 독립전쟁을 벌였던 아타튀르크가 1923년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뒤 천도한 도시로서 인구 550만 명으로 이스탄불에 이은 터키 제2의 도시이다.앙카라에서 맨 먼저 찾아간 곳은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31~1938)가 묻혀 있는 아타튀르크 능묘(Ataturk Memorial Park)인데, 그는 1차 대전 때 오스만제국의 장군으로서 연합군과 싸워서 승리
소피아 성당을 관람하고 나온 뒤, 길 건너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지하 저수시설인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ay)를 찾아갔다. 대지가 건조한 이스탄불에서는 일찍부터 곳곳에 저수시설을 많이 만들었는데, 특히 유럽과 아시아대륙의 사이에 위치하여 많은 전쟁을 치를 때 비상식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532년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건축한 예레바탄 사라이는 “땅에 가라앉는 궁전‘이라는 의미인데, 지하저수시설을 궁전 못지않게 화려한 코린트식으로 장식해서 지하궁전(Saray=Place)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