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에베소(3)

목재 건축물이 대부분인 우리와 달리 고대 그리스는 대리석 건물인데, 대리석 돌기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했다.

대리석 돌기둥은 몸(柱身)· 기둥 받침(柱礎)· 기둥머리(柱頭) 등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도리아식(Doria)→ 이오니아식(Ionia)→ 코린트식(Corinth)으로 바뀌었다.

도리아식은 장중하고, 이오니아식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코린트식은 화려하다. 즉, 도리아식은 홈파기로 파낸 기둥을 주춧돌 없이 직접 땅 위에 세웠으며, 기둥의 윗부분인 기둥머리도 아무런 장식이 없이 단조롭다.

BC 5세기 중엽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헤파이스토스 신전(일반적으로 테세이온이라고 함) 등에서 볼 수 있다. 이오니아식은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또 기둥에도 홈을 깊이 파서 명암을 나타냄으로써 수직적인 느낌을 강조했으며, 기둥머리는 물결의 소용돌이 모양이 특징이다.

이것을 측면에서 보면 장구나 베개 같은 형태인데 대표적인 건물로 BC 435년~ 425년 아테나의 니케 신전(Nike),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Prophilia),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Artemis) 등이 있다.

또 코린트식은 대체로 이오니아식과 큰 차이가 없으나, 기둥머리에 나뭇잎을 2단으로 겹쳐서 부각한 것이 특징이어서 이오니아 양식의 변형이라고도 말한다.

코린트식은 건물의 외부 기둥으로는 많이 사용되지 않고, 주로 실내 기둥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는 물론 유럽여행에서는 대리석 기둥과 조각의 파편들을 통해서 고대 건축문화의 변천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에페소 유적의 정문인 북문 매표에서 원형광장 입구인 ‘대리석 거리’는 켈수스 도서관 앞에서 약간 구부러지면서 크레디아 거리가 시작되는데, 크레디아 거리는 대체로 공공시설 거리이다.

대리석 거리와 크레디아 거리가 이어지는 켈수스 도서관 앞의 미트리다테스 문은 사실상 고대 에페소의 중심인 셈인데, 이곳에서 고대 에페소 의회 건물이 있는 남문 매표소 앞까지 완만하게 경사진 ‘크레디아 거리’가 펼쳐진다.

먼저 크레디아 거리의 왼편 공중목욕탕 옆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신전(Hadrian’s Temple)은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했던 5현제(五賢帝: 96~180) 중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 황제(Hadrianus: 117~138)를 위하여 황제의 사후에 에페소인들이 세운 것이다.

참고로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룬 5현제는 네르바(Nerva: 96~98), 트라야누스(Trajanus: 98~117),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Antoninus: 138~161), 아우렐리우스(Aurelius: 161~180) 등이다.

138년 건축가 퀸틸리우스(P, Quntilius)가 건축한 신전은 대지진으로 무너진 후 외형만 복원되었는데 아치형 신전 가운데에는 그리스신화에서 나오는 유명한 두 여신인 테티스(Thetis)와 메두사(Medusa)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바다의 여신 데티스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낳는 자식은 아버지보다 힘이 더 셀 거라는 예언에 그녀를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간계로 해라(Hera), 아테네(Athene), 아프로디테(Aphrodite) 등 세 여신이 다투다가 목동 파리스에 의해서 아프로디테가 최고 미인으로 뽑히면서 트로이 전쟁(BC 1500~ BC 1200)이 벌어졌다.

또 바다의 신 포르키스와 케토 사이에서 태어나 세 딸 중의 하나로서 머릿결이 곱기로 소문난 아름답던 메두사는 아테네 여신의 미모와 견주려고 했다가 노여움을 받아 어금니는 멧돼지처럼 뻗어나고, 머리는 머리카락 대신 뱀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로 변하게 되었다.

게다가 누구라도 메두사의 눈과 마주치면 모두 돌로 변해 버렸는데, 페르세우스가 아테네 여신으로부터 청동 방패를, 헤르메스로부터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 구두를 빌려 신고 가서 메두사를 죽었다(메두사에 관하여는 2019. 9. 2. 이스탄불 지하궁전 참조).

하드리아누스 신전 옆에는 세계 최초의 병원 아스클레피온(Asklepios)이 있는데, 그는 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고향 에게해의 코스 섬(Kos)에서 살다가 신의 계시를 받고 이곳에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을 세웠다.

아스클레피온은 지팡이를 뱀이 휘감고 있는 것으로 상징되는데, 허물을 벗는 뱀은 생명과 재생을 상징하며 오늘날 의사들을 상징하는 마크가 되었다.

병원 표지석 뒤에는 병원 터와 폴리오 샘이 있는데, 아스클레피오는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샘물에 목욕하면 치유된다며 샘을 만들었다고 한다. 제우스신은 아스클레온 때문에 인간이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되면 자신의 권위가 손상될 것을 염려하여 번개를 쳐서 그를 죽였다고 한다.

폴리오의 샘 옆에는 조각난 석판(石板)들이 많은데, 그중에는 원래 삼각형이었는지 파손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삼각형 돌판에 새긴 승리의 여신 ‘니케(Nike)’가 있다.

1971년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던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이 이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오늘날 유명한 나이키 상표의 로고를 만들었는데, 그녀는 이 로고를 당시 단돈 35달러에 팔았다고 한다.

1971년 NIKE 글자와 함께 로고가 공개되면서 큰 인기를 얻어 오늘날 자산가치는 7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며, 1983년 9월 나이키사에서는 그녀에게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하고, 한동안 나이키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은퇴했다고 한다. 부근에는 포도, 파인애플 등 작물을 새긴 것도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풍요를 상징하는 것 같다.

남문 끝 에페소 의회 건물에 이르기 전에 헤라클레스 문(Gate of Heracles)이 개선문처럼 우뚝 서 있고, 그 왼편에는 엠마우스 기념비(또는 뫼비우스 기념비: Moument of Memmius)가 있고, 오른편에는 도미티아누스 신전(Temple of Domitian)이 있다.

엠마우스 기념비는 BC 86년 로마의 독재자 술라(Sulla: BC 138~ BC 78)의 손자 엠마우스가 세운 기념비로서 한 면에 두 사람의 흉상이 있는데, 한 사람의 허리 부분이 없다.

BC 5세기 이후 약 500년 동안 에페소는 로마제국의 과중한 세금 부과로 시달리면서 로마에 저항했는데, 로마에 반대하는 아나톨리아 북부의 폰토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6세(BC 135~ BC 63)를 적극 지지했다.

미트리다테스는 하루 만에 로마시민 8만여 명을 무차별 학살할 정도로 잔인했으나, 로마와의 전쟁에서 술라에게 패했다. 그 후 술라의 사위 엠마우스가 미트리다테스에게 학살당한 로마인들의 넋을 달래주는 기념비를 세웠는데, 이것은 로마가 에페소에서의 권위를 과시하며 술라를 칭송하는 비이다. 그리고 에페소인들은 미트리다테스의 학살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막대한 세금을 더 부담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