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셀죽 아르테미스 신전
[139] 셀죽 아르테미스 신전
  • 정승열
  • 승인 2019.11.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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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 법무사
정승열 법무사

 에페소 고대 유적에서 북동쪽으로 약 2km가량 떨어진 셀추크(Seljuk, Seljuk)에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이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와 티탄 족의 여신 레토(Leto)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로 태어나서 아폴론은 태양신이 되었고,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 되었다. 아르테미스는 순결과 정절의 상징이었으며, 활의 명수로서 사슴 사냥을 좋아하는 사냥꾼으로 표시되고 있다.

그래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이마에 반달 모양의 장식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로마 시대에는 다아나(Dana), 영어로는 다이애나(Diana)라고 불렸다. 그리스인들은 속주나 식민지에 그리스문화의 전파에 노력했는데, BC 700년경 소아시아를 지배한 그리스인들이 에페소에도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었다.

그러나 에페소를 점령한 이교도들에 의해서 모두 파괴되고, BC 560년 당시 세계 최고부호이던 리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BC 564~ 560)가 셀주크에 이오니아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은 대표적 이오니아식 작품인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식 등 그리스 고대 3대 건축의 하나로 꼽히는 이오니아식이란 지금의 터키 지방인 소아시아의 해안가인 이오니아(Ionia)의 건축양식이다. 도리아식이 묵직하고 장중하며 단정한데 비하여 이오니아식은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부에 걸쳐 조각 장식이 많이 있어서 경쾌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특히 기둥과 기단 사이에 아름다운 주초(柱礎)를 끼우고, 2개의 소용돌이무늬를 연결한 특유한 기둥머리(柱頭)를 만들어서 도리아식은 남성에, 이오니아식은 여성에 비유되기도 한다. 페르시아전쟁에서 최후로 승리한 그리스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웅장한 신전을 세우면서 파르테논 신전은 도리아식, 니케 신전과 에렉테이온 신전은 이오니아식으로 건축할 만큼 세련된 건축양식이었다.

1. 아르테미스신전
1. 아르테미스신전

1-1. 신전 안내판
1-1. 신전 안내판

1-2. 신전 터
1-2. 신전 터

셀추크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아이오스 테올로고스(Ayios Theologos)가 있던 곳으로서 오스만제국 시대에는 아야솔루크(Ayasoluk)라고 부르다가 1914년 오스만튀르크 제국 시대에 셀추크로 변경되었다. 지명을 셀주크라고 고치게 된 것은 12세기 이곳에서 오스만튀르크가 건국해서 유래되었으며, 셀추크에는 예수가 처형된 후 사도 요한의 보살핌을 받고 살다가 죽은 성모 마리아의 집도 있다. 

셀주크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18m 높이의 돌기둥 127개로 길이 137m 폭 69m의 초대형 건물로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두 배 이상 큰 건물이다.

즉,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 후 최고의 국력을 과시하던 BC 447~ 432년까지 16년에 걸쳐 세운 파르테논 신전은 높이 10m의 돌기둥으로 길이 69.5m, 폭 30.8m의 규모인데, 파르테논 신전 보다 두 배 이상 큰 아르테미스 신전은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BC 310년경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에페소를 해방한 알렉산더 대왕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아르테미스 신전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신전의 규모와 아름다움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262년 고트족의 침략으로 파괴된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잊혀졌다. 게다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JustinianusⅠ: 482~565)가 537년 수도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에 거대한 지하궁전을 신축하면서 아르테미스 신전의 많은 석재를 뜯어가는 등 우상숭배의 상징이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자세히는 2019. 9. 2. 이스탄불 지하궁전 참조).

2. 에페소박물관 안내서
2. 에페소박물관 안내서

2-1. 아르테미스여신의 계보도
2-1. 아르테미스여신의 계보도

2-2. 아르테미스신전 복원도
2-2. 아르테미스신전 복원도

 1859년 영국의 건축가이자 고고학자인 우드(J.T.Wood: 1821~1890)가 에페소 고대 유적지에서 원형극장(Efes Theatre)을 처음 발굴한 이후, 1865년 아르테미스 신전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우드의 6년 동안 발굴작업 결과 세상 사람들은 신전 터의 주춧돌과 돌기둥, 조각 파편만으로도 웅장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발굴된 유물 대부분은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터키 정부에서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출토된 유물의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은 우드 발굴팀이 적법한 허가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신화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이마에 달 모양을 하고 사냥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에페소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신은 젖가슴이 많이 달려 있고, 또 신체의 아랫부분에는 동물과 새들을 조각하는 등 크게 달라서 설명이 없으면 아르테미스 여신이라고 알아볼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신화가 아시아 지역에 토착화한 현상을 보여주며, 젖가슴이 많이 달린 것은 인간과 동식물을 기르는 여신으로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3. 아폴론(바티칸박물관)
3. 아폴론(바티칸박물관)

3-1. 아르테미스(바티칸박물관)
3-1. 아르테미스(바티칸박물관)

3-1.에페소 출토 아르테미스 여신
3-1.에페소 출토 아르테미스 여신

4. 아르테미스(루브르박물관)
4. 아르테미스(루브르박물관)

4-1. 아르테미스(에페소유적)
4-1. 아르테미스(에페소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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