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공주 유명 사립고등학교의 이상한 교육
공정과 신뢰는 교육의 근간이다. 하지만 공주시에 위치한 사립 A고의 ‘성적우수자 특별반’ 운영을 둘러싼 의혹은 그 근간을 흔들고 있다. 특정 학생들에게만 제공된 특혜와 이를 방조한 듯한 학교의 태도가 그렇다. <디트뉴스>는 출결·수행평가·생활기록부·특별활동·시험지 요구 등 다양한 사례와 관련 정황을 추적하며, 이를 가능하게 한 학교 운영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본다. 이번 사안은 단지 한 학교의 일탈이 아닌, 지역 교육의 신뢰성과 형평성, 나아가 고교 서열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학생 간 차별의 실태와 그 배경을 사회적 맥락에서 조명하고하고자 한다. 총 5편으로 구성된 이 기획은 내부 증언과 자료, 전문가 분석을 바탕으로 특별반의 실체를 재구성하고, 제도적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 이제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 다시 질문할 때다.
① 성적우수자를 위한 '특별반'의 그림자
② 기준은 있었을까..조작된 수행평가와 생기부
③ 학교의 주인은 학생일까, 사학재단일까
④ 교사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⑤ 공정한 교육의 조건 <끝>
“모두가 피해자였다.”
A고 사태를 지켜본 한 교사가 이번 사안의 본질을 압축해 표현한 말이다. 특혜를 받지 못한 학생들은 기회를 잃었고, 혜택을 받은 학생들조차 잘못된 학습을 내면화했다. 교사와 지역사회마저 피해를 입은 구조적 문제 속에서, 공정한 교육의 조건은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있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박진성 교사는 <디트뉴스24>와 인터뷰에서 이번 A고 사태는 현재 국내 사학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박 교사는 “사학은 관행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크다. 인사 이동이나 교류가 거의 없는 강고한 집단 구조가 짜여 있다 보니, 그런 일관성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나쁜 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교사의 지적은 단순히 한 학교의 운영 문제를 넘어, 사학재단 전반의 ‘폐쇄적 구조’가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외부의 감시와 교류가 차단된 채 내부 논리만으로 굴러가는 구조 속에서 왜곡된 관행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폐쇄적 구조가 낳은 왜곡된 관행
그는 “사학재단은 학생 한 명 한 명이 재단 존속의 중요한 요소다 보니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수단도 쓸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공립은 생활기록부 작성이나 과목 배정에서 교육청의 규제가 엄격하지만, 사립은 ‘입시’라는 명목으로 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율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 사례를 예로 들었다. “제가 들은 사례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 기준으로 1학년 ‘통합사회’ 과목을 교사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나눠 맡겼다는 것”이라며 “공립에서는 같은 계열 안에서조차 과목 교차 배정에 엄격하다. 그런데 네임드로 통하는 사학에서도 이런 편법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교사 미자격자에게 과목을 맡겼다’는 사례는 교육의 기본 원칙마저 흔드는 행위다. 이는 사학이 자율성을 내세워 사실상 ‘무규제 영역’으로 방치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립과의 규제 강도 차이가 불공정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박 교사의 증언은 A고 사태가 단순한 학교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사학 구조 전반에 내재한 고질적 문제라는 점을 드러낸다. 자율성을 내세운 사학 운영이 사실상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편법 관행’을 낳고, 그것이 교육의 공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는 “A고 사례가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학재단 전반의 전형적 문제라고 본다. 지방 사립이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 큰 학교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문제다. 사학은 본래 공공성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재단 존속 자체가 목적이 된 듯하다”며 “최근 부산 브니엘예고 사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재단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든 동원된다는 인식이 문제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박 교사의 발언은 ‘사학의 공공성 상실’을 핵심 문제로 지목한다. 공공을 보완하기 위해 태어난 제도가 오히려 사익을 위해 왜곡된 방식으로 운용되면서,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피해자가 되는 구조를 설명한다.
모두가 피해자 된 교육 현장
특히 피해 주체와 관련해 “가장 큰 피해자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학생들”이라며 “공정하게 기회를 열어두고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 상식인데, 처음부터 대상을 정해 지원을 몰아준 것은 학교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 입시 체제에서는 내신만이 전부가 아니고 성적 만회 장치도 많다. 그런데 소수만 뽑아 밀어주는 사립의 관행은 학생들을 라벨링 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학부모 입장이라면 분노할 일이다. ‘기회를 열어두고 못하면 못하는 것’과 ‘처음부터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사학은 작은 사회다. 한 재단에서 20~30년을 근무하다 보면 ‘30년짜리 운명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내부 자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학이 움켜쥐고 있는 인사권이 문제의 핵심이다. 기간제 재계약을 빌미로 교사들을 압박하는 경우도 많다”고 진단했다.
학생들에게 기회를 ‘처음부터 차단’하는 것은 교육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또한 교사 인사권을 틀어쥔 재단의 구조적 권력은 내부 비판을 봉쇄하고, 무기력한 중간관리자 그리고 권력에 눈이 멀어 학생을 출세의 수단으로 쓰려한 교사를 주축으로 한 ‘침묵의 카르텔’을 고착화시킨다. 결과적으로 학생·교사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그는 대안으로 “인사권을 건드리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일정 비율의 교사를 공립에서 파견하거나 순환 근무를 의무화해 ‘고인물’을 막아야 한다”며 “예컨대 공립에서 교사를 먼저 선발한 뒤, 일정 기간 사학에 근무하고 다시 공립으로 돌아가는 초빙제 형태의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공공성 회복 위한 제도 개혁 시급
또 “사학의 이념이나 종교적 특성은 교목 등 일부 직무에 한해 자체 임용을 허용하고, 일반 교과는 공립, 사립 순환 구조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불편하더라도 이 정도의 제도 개혁이 없으면 침묵과 은폐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사학은 자율성을 내세우지만 교사 인건비 등 운영 재원은 대부분 교육청이 부담한다. 돈 준 만큼 감시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교무·학사 영역만큼은 사립과 공립을 동일한 잣대로 감사하고, 정기적 평가·보고 체계와 공공이사 확대 참여 같은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승호 충북 지역 교사도 A고 사태의 구조적 문제를 짚으며,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성적 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 평준화 지역의 사립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A고 사례는 비평준화 지역,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견제와 감시가 약화된 틈을 타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공부 잘하는 학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기대와, 학교의 목표가 일치하면서 이런 운영이 자리잡았다”며 “이는 비평준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사는 “지도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가 피해자였다. 몰아주기에서 배제된 학생들은 실질적인 기회를 박탈당했고, 이에 저항하거나 거부한 교사들도 불이익을 입었다. 몰아주기의 대상이 된 학생들조차 ‘공부 잘하면 밀어줘도 된다’는 왜곡된 사회적 메시지를 학습했다”며 “결국 이 학생들도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사의 지적은 사학의 관행이 학생 개개인의 진로를 왜곡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의 교육 신뢰를 훼손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정 학교의 성과주의가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도 피해를 전가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제도 개선 방안으로 그는 교육청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립학교는 자율성을 이유로 교육청의 개입이 약하다. 그러나 교사 인건비와 운영 재원은 대부분 교육청이 부담한다. 노골적으로 지원받은 만큼 감시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정기적인 평가와 보고 체계, 공공이사 참여 확대 같은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A고 사태는 한 학교의 일탈이 아니라 사학 구조 전반의 고질적 문제를 드러냈다. 인사권 , 느슨한 규제, 지역사회의 묵인이 맞물리며 학생·교사·지역사회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
교사와 전문가들은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인사권 개혁을 통해 순환 근무와 공립 파견으로 폐쇄적 구조를 깨야 하고 둘째, 공립과 동일한 감사를 도입해 생활기록부와 평가 운영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공이사·지역사회 참여를 확대해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근간은 공정과 신뢰다. 사학의 자율성이 공공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한편 현재 충남교육청은 A고에 대한 감사를 마무리하고 A고 측에 감사결과를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A고 재단의 이사회에서 교육청의 감사 결과를 두고 어떤 내부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