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 정부에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3일 충남 아산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3일 충남 아산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패배가 아니라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 윤석열 후보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당선인께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선패배를 인정하며 국민들께 내놓은 메시지다. 짧지만 강력한 이 말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에 다시 희망을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난 1년여 동안 뜨겁고 어지러웠던 대통령 선거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최악의 평가도 있었는가 하면 네거티브와 포퓰리즘 선거라는 비판도 끊이질 않았다. 결국 이 혼탁한 정치에 대해 국민들은 걱정과 고민 끝에 투표로써 여야 모두에게 무거운 심판을 내렸다.

역시 민심은 냉철하고 무섭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고 정치지도자의 선거에서 그것도 유권자가 4400만이 넘는 대단위 선거에서 0.7%(26만 7천표) 차이로 승부를 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우선 우리사회 구석구석이 철저히 분열돼 있는데다 우리 국민들이 본의 아니게 적과 동지로 정확히 반분되어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투표를 통해 직접 정치권에 일깨워준 것이다.

국민 모두의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임기말까지 지켜지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들을 이념·지역·세대·계층 나아가 친일·반일, 친북·반북 등 모든 분야에서 적과 동지로 편 갈라 분열과 증오의 세상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했다. 이는 문 정권 최대의 실정이자 대한민국의 비극이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이 평가가 바로 정권교체의 열망으로 표출되어 현 정권을 심판한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윤 당선자에게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줄 것을 당부한 점은 선거기간에 민심을 정확히 확인하고 전해준 뜻 깊은 충고다. 아마도 이재명 후보는 선거 내내 현 정권의 실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지만, 친문 지지표를 의식해서 비판도, 단절도, 그렇다고 승계한다고도 할 수 없는 모순과 고민이 선거를 힘들게 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선거직후 다음 대통령에게 던진 권고는 진짜 값지다. 이 점은 여야를 막론하고 귀담아 듣고 국민화합과 통합의 노력으로 함께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디트뉴스 자문위원.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디트뉴스 자문위원.

곧 여야가 바뀌겠지만, 새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또다시 진영논리에 빠져 자기 지지층만 보는 부족정치의 수장이 되거나 이에 복종하는 거수기가 되서는 안된다. 선거전리품 챙기려 밥그릇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재현한다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더 가혹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야당이 될 민주당도 선거기간 국민들에게 약속한대로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선거제도 개편 등의 정치개혁 방안들을 입법화시켜서 대국민 약속과 신뢰를 지켜야 할 것이다. 국회의석 172석을 쥔 다수당인 민주당이 선거의 열패감과 아쉬움을 정치적으로 되갚아 주려한다면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재명의 시대정신과 충고를 외면하는 것이 된다.

특히, 고무적인 일은 박빙의 승부임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후보가 대선결과를 깨끗하게 승복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재명 후보를 따라다닌 부정적 품성 평가를 잠재우고 정치적 지도자로 인정받는 중요한 의미도 있을 뿐더러 길 잃은 한국정치가 다시 한 번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엄청난 정치발전의 효과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제의 모범국가라고 불리던 미국에서도 최근에 해결하지 못한 일을 이재명 후보가 귀감이 되어 준 것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선거에 패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 지지자들은 국회를 점거해서 폭력이 난무하는 민주주의의 실종 현장을 참담하게 지켜본 입장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 시켜준 이재명의 용단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매 선거 때마다 불거진 부정선거의 악령에서 벗어난 계기가 마련되어 다시금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 경제선진국으로 발돋움 한 대한민국이 정치선진국으로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정치적 쾌거다.

한편, 국민통합과 화합이 중요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지난 5년 문정권의 국정과 제반 정책의 성적표는 안타깝게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민생과 직결된 일자리와 부동산 문제를 비롯해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제 등 경제정책 모든 분야에서 성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컸다. 총체적인 실정과 실패들은 국민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자화자찬 정책홍보와 깜짝 이벤트로 가려지지 않는다.

헌정사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법관 탄핵, 비례위성정당 창당, 역대 최다 국가부채를 비롯해 비리의혹 장관 임명 강행과 연이은 성범죄 단체장 배출, 울산시장 선거개입을 비롯한 권력형 비리 양산, 원전폐기의 범법행위 등은 하나같이 정권 실패사례들로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더욱이, 국제외교상 고립을 자초한 일방적인 친북 유화정책은 임기동안 어쨌든 전쟁을 피했다는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았듯이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같은 문서가 아니라 결국 국가의 국방력, 지도자들의 애국심과 희생의지 그리고 국제적 동맹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완전무결한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부 정책은 찬․반이 따른다. 정책 속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순기능을 극대화시키면서 역기능을 최소화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국민과 함께 소통하면서 정책의 찬․반을 면밀히 따지고 국민을 설득해서 공감대를 얻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 정권은 이 점을 놓쳤다. 부작용이 크게 나타난 정책과 국민들이 반대한 실정에 대해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5년 내내 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여야정치인들에게 깨우쳐준 준 두 번째 시대정신이 바로 겸손이다. 현 정권이 내로남불 정치와 정책으로 일관한 결과를 국민들은 투표로 심판했다. 새로 출범할 대통령과 집권여당에게도 겸손하라는 경고로 작은 승리만 안겨주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많은 국민들의 미련과 아쉬움이 크겠지만, 그들도 존중받아야 할 우리 국민이고 함께 가야 할 중요한 인적 자원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문재인 정권의 심판은 끝났다. 그러나 국정과 정책의 실패요인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요약하면, 국민 분열과 갈등의 조장, 제왕적 대통령제와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 정책오류와 실패에 대한 수정 거부, 국민과의 소통부재와 여야 협치 실종, 자기진영 위주의 인사발탁이 그 주요인으로 보인다.

이제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먼저 문정권의 실패요인들을 철저히 복기해서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정철학과 비전, 운영 틀과 방식 및 정책들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겸손한 자세로 깨끗하고 유능한 인재와 함께 성실한 준비로 정권을 이양 받아야 할 것이다. 곧 구성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역할과 준비가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헤쳐 나가야 할 파고는 높고 거칠 것이다. 신냉전시대 국제경제와 국가안보의 불확실성, 저출산 고령화와 기후위기, 4차산업혁명, 언택트 사회의 환경변화에 대처하며 대한민국은 국민화합과 통합 하에 미래를 향해 희망찬 항해에 나서야 한다. 다시 남탓, 과거탓, 전 정권 탓하고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 시대정신을 잊고 정적을 향해 복수의 칼날만 휘두르며 시간을 낭비할 겨를도 없다.

무엇보다, 새 정부는 출범한 첫 90일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고 한다. 정부 각 부처의 책임자들은 이 기간 내에 부처의 목표정립과 일체감 형성, 팀워크와 네트워크의 구축 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가급적 국민들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성과물을 빨리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국민들과의 다양한 소통을 통한 공감과 지지의 확대, 그리고 꾸준한 자기학습과 자기혁신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5월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겸손과 통합의 시대를 여는 성공하는 대통령과 새 정부가 되기를 국민들과 함께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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