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것 없이 어릴 때부터 소리를 통해 글을 배우는 시절을 보낸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보내는 과정에서 중년기가 되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다시 삶을 살아가는 중대한 제2의 인생을 계획한다. 살아냈던 삶 가운데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몸소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때론 살점이 떨어지는 아픔도 경험하고, 괜한 돌이 날아와 이유 없이 맞기도 하고, 알면서도 서로에게 아픔의 흔적을 주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런 다양한 이유로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상처치유에 적극적으로 돕는 것도 아니다
부모는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솔직함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솝 우화 중 하나인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수시로 해준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을 때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또 거듭해준다. “거짓말은 나쁜 거야. 잘못을 했어도 솔직하게 말해야 용서를 받을 수가 있어.”를 입이 마르도록 말을 한다. 그래서 교육이 아닌 잔소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솔직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덕목인지도 모른다. 특히, 성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솔직하게 진술하고 반성정도에 따라서 또는 초범인지에 따라서 형벌이 경감되는 경우가 있다.
홍길동은 자주 과거에 자신이 잘못 결정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자책을 자주 한다. 그런 일상이 결국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고,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유발하게 되었다. 충분히 잘 살아왔는데, 홍길동은 그렇게 살지 못했던 과거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일로 속상해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거 일은 과거의 홍길동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현재 일은 현재의 홍길동에게 물어보라.” 이 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일의 ‘나’는 똑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쉬운 예로, 「10년 동안 A는 B를
우리는 살면서 실수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실수’라는 것은 일적인 문제, 감정의 표출,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상처 주는 것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때론 자녀(아이)를 성인으로 착각하면서 자기 스스로 모든 일을 척척 해주기 바라면서, 어쩔 때는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면서 버리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함부로 막 다루기도 한다. 반대로 모든 대상을 인격적으로 존중한다고 해서 무엇이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끝까지 살아봐야 조금 알 수도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흡수된 죄책감, 수치
2023년 1월 17일 친정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요양병원으로부터 받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 이별의 소식은 심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부고를 알리는 것은 아버지의 삶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라니 그런 의미에게 전달하니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하여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아버지의 부고소식을 어느 선까지 알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발인일정을 마쳤다. 초우를 지내고 하루정도 쉼을 갖고 핸드폰의 연락처를 종이에 옮기다보니 알리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현재 연락하고 있는 사람
성격과 인품과의 관계는 어떠할까? 성격은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인품이라 그리 간단하게 바뀌지 않고 바꿀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성격에서 오는 불편함이 장애가 되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반드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도 바뀌기도 한다.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내 성격을 발견하곤 한다. 때로는 ‘나’가 아님을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다. 흔히들, 성격이라고 하면 쉽게 알고 있는 혈액형에서의 특징, 사람들하고의 소통할 때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오는 성격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의문이 생겼다.
공감(共感)을 알기 이전에, 타인으로부터 공감을 받아본 경험은 상당히 중요하다. 타인으로 챙김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라든가, 다양한 축하메시지를 받았을 때, 칭찬과 인정을 받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떠올려 보라. 뭉클함과 감사함, 뿌듯함 등의 긍정적 정서가 떠오를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많이 쌓여 ‘공감’이라는 밑바탕을 형성하게 된다. 즉 공감하려면 기쁨, 행복, 감사, 벅참, 설렘 등의 긍정적 정서가 풍부해야 한다. 반대로 부정적 정서가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공감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공감에는 직접적 공감과 간접적 공감이 있다
‘아침의 문학회’ 송년의 밤을 보내고 감사와 감동의 글을 써 보려합니다.저는 2019년도에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졸업을 하였습니다. 박사과정 중에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몇 차례 시술을 받으면서 인간관계를 정리해야했고, 제가 소속된 모임을 모두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그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였고, 제 성향대로 대처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상당히 내향적인 성향을 지녔던 사람인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내향적으로 사는 것이 참 편안합니다.너무 많은 힘든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박사라도 졸업하지 않으면 ‘죽어
‘당연함’은 왜 욕망의 친정집인가? 당연함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 이상으로 욕망을 꿈꾸게 한다. 그 욕망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도 피폐해지게 하는 ‘암흑의 연기’와 같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과정 중에 식당을 가거나 카페를 갈 때, 여행을 갈 때 돈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것을 ‘데이트비용’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때 사용되는 데이트비용은 보통 남성이 많이 지출하거나 비용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반대로 경제력이 여성에게 있다고 볼 때는 경우는 달라진다. 이것은 사회적인 흐름에 따라 조금은 변해가고 있
우리는 각자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형성된 자기 나름대로 원칙(규칙)이 가지고 있다. 이 원칙은 상당히 주관적이라서 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다. 원칙은 자신을 규율 속에서 정당화시켜버리고 그것을 마치 당연하게 해야 하고,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무의식이 점령당해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연함의 규칙이 삶의 멘토로 입력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원칙(규칙)이 많을수록 당연함은 많아진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밖에서 놀다 오면 집에 들어와서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불효자는 웁니다’란 노래 가사가 떠올렸다. 정신분석 스터디 제목이 ‘내 안의 진짜 얼굴을 찾아 떠나는 심리 여행’으로 자기 정신에 자신도 모르게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그 무엇을 찾아보는 작업이었다. 우리의 무의식은 의식으로 행해지는 것보다 몇 배로 강력하고 많은 영역에서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신의 ‘정신구조(mental structure)’라고 말할 수 있다. 노래 가사에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 흘리시고, 못 믿을 이자식의 금의환향을 빌고 계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핏줄이 어느 가정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커피숍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니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자연스레 가는 곳이었다. 커피의 맛도 잘 모르고, 어떤 날에는 “달달한 것으로 주세요.”, “그냥 똑같은 것으로 주문해줘요.”라고 말했던 적이 많다. 나에겐 커피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처음에 먹었던 커피가 ‘카라멜마끼아또’였다. 그래서 처음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카라멜마끼아또’를 사주기도 한다. 최근의 나는 기분에 따라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 주세요.”, “커피 라테 주세요”, “따뜻한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