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대승적 결단의 언어 뒤에 가려진 도민 주권의 공백
김태흠 충남지사는 15일 오전 KBS 생생뉴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전시와 추진중인 행정통합을 강조하며 “통합된다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 중 한 명은 그만둬야 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내가 먼저 내려놓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지만, 이 발언은 '도민이 부여한 권한을 어디까지 정치적 제스처로 다룰 수 있는가'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도민이 위임한 권한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별다른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를 개인의 정치적 계산이나 도덕적 제스처 차원에서 “내려놓겠다”고 언급하는 것은 주권자의 의사와 무관한 발언으로 보인다. 권한은 개인의 결단으로 처분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도민의 합의와 제도적 절차에 의해서 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지사의 ‘사퇴 용의’ 발언은 대승적 결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도민 위임 권한을 마치 사적 카드처럼 사용하는 인상을 준다. 이는 도지사직의 본질을 “개인의 직책”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며, 도민 주권을 경시하는 태도다.
김 지사와 대전시는 올해 들어 각 시·군을 돌며 행정통합 설명회를 열었다. 그러나 여러 지역에서 크고 작은 반발이 쏟아졌다. 주민들은 단순한 행정구역 변경이 아니라, 충남의 재정·정책 결정권이 대전 중심으로 기울 수 있다는 현실적 불안을 드러내거나 왜 통합이 필요한지에 대해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표출했다.
그럼에도 김 지사는 이러한 불안을 제도적 해법으로 설득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사퇴하겠다”는 식의 언어로 봉합하려 했다. 충남이 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통합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을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 지사가 정치적 이득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발언은 불가피하게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임기 후반부에 나온 “사퇴 용의”는 책임을 덜고 순수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통합 논의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고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는 정책적 성과보다는 정치적 이미지 관리에 방점이 찍힌 전략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는 통합 이후 충남의 권한 배분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퇴’라는 희생의 제스처만 남을 뿐, 권한 보장의 제도적 장치는 비어 있는 셈이다. 이는 도민을 안심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민생을 우선시 하는 도민의 입장에선 행정통합 논의의 핵심은 ‘통합의 당위’가 아니라 ‘통합 이후의 권한 구조’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이다. 충남의 재정 권한, 정책 결정 구조, 지역 대표성은 어떻게 보장될 것인가? 대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통합은 결국 충남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도민의 위임 권한을 희생시키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정치적 제스처는 때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행정 개편은 개인의 제스처가 아니라 제도적 설계로 완성된다. 김 지사의 ‘사퇴 카드’는 단기적으로는 순수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충남 권한 보장의 핵심 문제를 흐리는 착시에 불과하다. 충남 권한을 도민에게 어떻게 지키고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해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