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철의 좋은 정치] 미몽
근자에 술자리에서 장동혁 의원 얘기가 나왔다.
“그 형님, 어쩌다 그렇게 된거야”라고 묻길래
“그 형님, 정치입문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겪었죠. 우여곡절 끝에 국힘으로 가고 국회의원 한 번 떨어지고, 대전시장 경선 컷오프 당하고, 지역구 옮겨서 당선되고..아마 그러다보니 ‘이기는 게 장땡’이라는 생각할 겁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마 이기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생각할 거에요.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나를 조롱하던 사람들도 결국은 ‘승리’하면 나를 이해하고 인정할 것이다.”
“결국은 실패할 겁니다. 실패하는 게 그 형님이나 우리 정치, 이 나라를 위해서도 좋아요.”
나는 과거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을 비평하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장동혁 대표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작년 12월 3일 그 밤에 멈춰있다. 여전히 내란 중이며, 더욱이 모든 대한민국의 위기였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상황이다.
잠시 장 대표에 빙의해 본다.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다. 계엄 할아버지를 모셔 와서라도 이재명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 이재명만 끌어내린다면 나는 이긴다. 승리한다. 그렇게 되면 나를 지금까지 비난하고 조롱하던 사람들도 모두 나를 인정하고 이해해 줄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온전히 모든 힘을 ‘이기는데’ 집중해야 한다.”
미몽은 ‘무엇에 홀린 듯 똑똑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정신상태’를 의미한다. 장 대표는 여전히 긴 잠에서 미몽을 꾸고 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정확한 현실 인식,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3일 내란 발생 이후, 장동혁 의원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 찬성을 촉구하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로부터 달력이 몇 장 넘어갔을 뿐인데,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간밤에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미 대통령과 대등한 실용외교를 펼쳤다. 앞서 이시바 일본 총리와 셔틀외교의 시작을 알렸다. 정말 오랜만에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지도자다운 모습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것 같다.
동시에 오늘 제1야당의 새로운 대표가 선출됐다.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이 불과 3년 만에 당의 얼굴이 됐다.
왼손 파이어볼러
국민의힘은 위기다. 그간 저지른 패악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내란의 원천이며 내란 국면에서 당 요인들이 연루돼 있다는 얘기와 증거가 특검을 통해 나오고 있다.
이제 곳곳에서 소위 ‘물어주는 일’들이 빈발할 것이다. 이미 여러 군데에서 물어주고 있고, 이 물어주는 일을 덮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 덮는다면 덮은 사람 또한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부터 추경호 전 원내대표 행적은 충분히 의심을 살만했고, 이를 증명할 핵심 물증만 나온다면 국힘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이다.
동정할 필요는 없다. 자업자득이다. 국힘이 위헌정당 요건에 해당하는 명백한 증좌가 있다면 언제라도 법무부장관은 국힘 정당해산청구를 신청할 것이다. 그것이 순리이고 국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야구명언에 “왼손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라는 말이 있다. 왼손 강속구 투수의 희귀성에 비춰 그가 선수 외적으로 구설에 있더라도 영입해야한다는 얘기다.
장동혁 의원이 3년 만에 대표가 된 것은 딱 이 정도 본능에 따른 것이다. 당을 영속·발전시키기 위한 포석이 아닌 당장 당이 살고 보자는 생존본능이 표출된 것이다. 그는 판사 출신이고, 법사위에서 정청래 당 대표와 상대해 봤다.
국힘 당원들은 그가 법리에 능하고, ‘윤 어게인 어게인 어게인’으로 심지 또한 확고하다. 정당해산청구가 임박한 지금에는 김문수 후보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정교일치에 준하는 발언을 한 것, 본인보다 오래된 당원들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손가락질 한 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 차이가 2366표로 나타났다.
콜드게임 패배
나는 정치평론가가 아니다. 중립적으로 해설하고 예측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한 때, 가까웠던 사람이 변하는 것이 옆에서 보기에 솔직히 안타깝다. 정치입문 5년 남짓, 국회 입성 3년 만에 제1야당 대표에 올랐다. 이것이 참으로 값진 승리이고 기념비적인 성공이라면 입 다물겠다. 하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 없다.
장 대표는 싫어하겠지만 그는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과 닮았다. 장 대표가 ‘뜨거운 한동훈’이라면 한 전 장관은 ‘차가운 장동혁’이다. 똑똑하고 언론과 소통하고 다루는데 능하다.
물론 한계는 명백한다. 그것이 장동혁과 한동훈이 비슷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외화내빈. 겉은 화려한데 실속이 없다. 진정성이 빈약하고 공허해 울림이 없다. 그들은 스킬이 뛰어나 보는 맛은 있는데, 실상 전광판을 돌아보면 7회 콜드게임(Called Game) 패배이다.
당장 전당대회 대표 선출까지만 파이어볼을 던지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당장 내일부터 연쇄 실점만 남았다. 장 대표와 국힘이 ‘YOON AGAIN’이 아니라 AGAINST YOON, 민주주의 AGAIN을 진정성 있게 외친다면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 대표와 국힘이 미몽에서 깨어나 명확히 현실을 인식하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정의로운 변침’을 할 가능성은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에서 무승부가 나올 가능성과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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