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 정체성 갈등과 행정력 혼선 낳을 위험성

지난해 12월 열린 충청광역연합 출범식 모습. 세종시 제공. 
지난해 12월 열린 충청광역연합 출범식 모습. 세종시 제공. 

대전, 세종, 충북, 충남 4개 광역자치단체가 충청광역연합이라는 특별지방자치단체를 출범시켰다. 이는 초광역 행정수요에 대응하려는 도전적인 실험이다.

한편, 대전과 충남은 별개로 두 자치단체를 하나의 행정체제로 통합하는 '대전충남특별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두 프로젝트 모두 '메가시티'라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그 철학과 실천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충청광역연합의 제도적 기반인 특별지방자치단체는 본래 각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과 자치권을 보장한 상태에서 혁신과 정책을 공동 추진하고 재정을 협력하는 모델이다. 이는 물리적 통합이 아닌 자율적 연합과 협업을 통해 행정의 효율성과 공동체 정신을 함께 키우려는 혁신적 시도다. 초광역 시대의 복잡한 과제들은 인위적 합병이 아닌, '따로 또 같이' 설계된 연합의 힘으로 풀 수 있다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반면,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은 두 자치단체를 완전히 하나로 묶는 구조적 재편이다. 지역사회의 조건과 특성, 주민의 삶의 양식은 차이를 갖는데, 통합 구상에는 이러한 다양성 존중보다는 '규모 키우기'와 '조직 일원화'가 앞선다. 효율성과 행정의 일체화를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자치와 지방분권의 가치와 충돌한다.

문제는 지금 이 두 제도적 실험의 근본적 차이가 현장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시민사회에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현재의 지방자치법만으로는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 권한과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어렵게 출범한 충청광역연합조차 불분명한 권한 분배, 공동재정 운용의 제약, 중앙정부와의 관계 설정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협업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행정통합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내세우며 모든 초광역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는 복잡한 초광역 경제권 수요에 대한 해법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접근이며, 행정통합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일괄적 통합은 각 지역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희생시키고 정체성 갈등과 행정력의 혼선을 낳을 위험이 크다.

일부 광역단체장들이 행정통합을 정치적 치적으로 활용하거나 통합 추진 자체만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홍보하는 태도 또한 문제다. 이는 초광역 수요에 대한 본질적 진단이나 합리적 대안 없이, 시민적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정치적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덩치를 키우는 통합이 아니라, 각 지역의 자치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동의 목표와 과제 앞에 협력하고 실질적 권한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파제를 만드는 데서 온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따라서 충청권이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취지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상의 권한과 재정, 책임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공동계획 수립권, 공동재정 집행권, 실효성 있는 권한 배분, 주민 참여와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등을 제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동시에 공직사회의 협업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지역별 특수성을 존중하는 신뢰의 문화를 만들 때, 비로소 충청광역연합은 초광역 행정의 실질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초광역 문제의 해법은 특별지방자치단체 제도의 취지를 온전히 살리고 그 실효성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물리적 행정통합은 다양한 지역 현실과 주민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위험한 지름길일 뿐이다. 진정한 초광역 메가시티는 통합이 아니라 내실 있는 협력과 자치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충청권이 가야 할 방향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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