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비용은 커지고 체감 성과 미약 '우려'
충남형 자치 모델 강조..졸속 추진 사과 촉구
대전·충남행정통합 논의가 지난해 11월 양 시·도지사의 통합 선언을 계기로 본격화된 이후, 올해 7월 대전시의회와 충남도의회의 의견 청취 가결로 지역 내 절차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민 참여가 극히 제한적이었고, 교육청·시민사회·전문가 등 주요 이해당사자와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충남교육청이 절차적 문제에 유감을 표명한 가운데, 통합 효과만을 강조한 일방적 홍보, 논의되지 않은 쟁점과 특례조항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충남참여자치시민연대,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3일 오후 2시 전교조 충남지부 회의실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시민사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일괄통합, 효율성 담보할 수 있나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인구감소·수도권 집중 등 ‘초광역’ 과제를 내세워 추진됐지만,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구역을 합치는 방식이 정답인가”를 먼저 묻는다. 그는 기후위기·재난·돌봄·광역교통처럼 경계를 넘는 의제에는 유럽의 다수준 거버넌스처럼 ‘연결과 협력’의 설계가 핵심이라고 짚는다.
먼저 추진 동기는 정치적 유인이 짙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부실했다는 비판이다. 협의회 선구성, 형식적 공청회, 통합 효과만 강조한 홍보, 여론조사의 수사(修辭) 의존이 정당성을 약화시켰다는 것.
특히 ‘메가시티’ 구호는 개념 혼란을 부른다고 평가했다. 단일 거대도시 모델과 달리 충청권은 다핵적 ‘초광역권’이 맞지만 규모 키우기 경쟁은 오히려 불균형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역 다양성과 정체성 훼손에 대한 우려도 내놨다. 연구·첨단산업 중심의 대전과 농공복합·해안산업 등을 아우르는 충남은 행정수요가 달라 일괄 통합이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제도 통합 비용과 갈등이 막대하다. 재정분담, 역할배분, 인사·직제, 전산 통합, 청사 문제 등이 장기 혼란을 낳고, 결과적으로 주민 서비스 저하로 이어질 수 있음도 지적했다. 간판만 바꾸는 피상적 변화 위험으로 상위기관만 합치고 기초 체계가 그대로면 규정·조례·절차 ‘맞춤 비용’만 커지고 체감 성과는 미약하다는 뜻이다.
대안으로 곽 교수는 ‘공유통치권(Shared Rule)’ 기반 초광역 협력을 제시한다. 과제별로 공동결정·공동재정·공동집행을 유연하게 얹는 방식이 적응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생활밀착 서비스는 기초단위에, 광역 인프라는 연합단위에 배치하자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특별지방자치단체(충청광역연합)의 실질 권한·재정·공동계획권을 강화하고, 중앙의 사전통제 축소·일반교부세화·공동기금 등 재정분권이 뒷받침돼야 한다. 협력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 지자체 간 신뢰 구축, 상설 시민참여 플랫폼도 필수 요소로 꼽는다.
결론은 “묶음이 아니라 엮음”이다. 행정구역의 물리적 합병보다 결정구조를 나누고 연결을 촘촘히 설계하는 길이 지속가능한 지역발전과 지방자치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메시지다.
졸속추진 사과해야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졸속 추진되고 있으며, 민주주의에도 반하고 지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주민 의견 수렴 없이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행정력과 예산 낭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농어촌을 포괄하는 충남과 도시형 대전은 행정 수요가 달라 통합은 주변부 소외를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규모 초고압 송전선 건설처럼 수도권 중심 정책을 중단하라고 중앙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라 충남형 자치 모델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주민 참여를 보장하는 상향식 의사결정 ▲기초자치와 풀뿌리 주민자치 강화 ▲지역 특성에 맞는 의료·교육·돌봄·교통·일자리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행정통합 논의에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출발하는 정책과 주민 삶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충남 통합은 국회 입법과 중앙정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이재명 정부가 불가 방침을 명확히 하고 국회도 소모적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김 지사와 이 시장이 지금까지의 졸속 추진 과정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멸위기 농촌, 불평등 심화 우려
홍성군의회 최선경 의원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그 화려한 명분 뒤에 농어촌 주민들의 삶이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합이 행정 효율성과 경제 규모 확대라는 그럴듯한 구호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충남 농어촌 주민들에게 심각한 행정 서비스 소외와 불평등 심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교통 문제는 심각하다. 농어촌 버스 감축과 불규칙한 배차로 주민 이동권이 크게 제한되고 있으며, “병원 한번 가려면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야 한다”는 불편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대전과 충남을 묶는 행정체계는 자연히 도시 중심 서비스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농어촌 교통은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행정은 효율성만을 따지는 기계적 운영이 아니라 주민의 삶과 일상에 닿아야 한다”며, 통합이 자칫 ‘껍데기만 합치는’ 형식적 변화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어촌의 행정 서비스는 이미 취약하며, 대도시와의 통합은 더 큰 소외를 낳을 뿐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 구호가 아니라 소규모 농어촌 지역의 행정 서비스 보장을 위한 구체적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특별법안, 교육서열화 심화시킬 수 있어
오수민 전교조 충남지부장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안)에 담긴 교육 관련 조항이 지방교육자치의 근간을 흔들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교육감 선출 방식을 별도의 법률로 달리 운영할 수 있도록 한 제54조가 러닝메이트제 도입으로 이어질 경우, 교육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교육 자주성과 중립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영재학교·국제고·특수목적고 설립 특례와 외국교육기관 허용 조항은 사실상 일부 계층에 특혜를 주는 길을 열어 교육 격차를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비 부담이 수천만 원에 이르는 국제학교 운영 지원까지 가능하게 한 조항은 교육 서열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시 소속 감사위원회가 교육·학예 분야까지 관할하도록 한 제69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육감의 독자적 감사 권한이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교육 자치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통합 추진 과정에서 교직원·학부모·교원단체 등 교육 주체들의 의견이 배제됐다는 점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민 설명회는 홍보 위주로 진행됐고, 특별법 초안조차 공개되지 않았으며, 민관협의체에도 시민사회 참여가 전무했다는 것이다.
오 지부장은 “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단기적 정치 논리나 경제적 이해로 방향을 정해서는 안 된다”며, 국회가 특별법을 심의할 때 교육 자치를 침해하는 독소 조항을 철저히 검토하고, 주민투표 등 민주적 절차를 통해 시민적 합의를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