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아흔일곱번째 이야기] ‘무릎 사과’는 홍범도 장군 앞에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혁신위 출범 이후 첫 일정을 광주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5일 “혁신위원들이 정해지면 5·18(묘지)에도 모시고 갈 것이고, 출발은 그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020년 8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한 ‘무릎 사과’를 떠오르게 만드는 일정이다. 김종인이 한 번 써먹어 재미도 감동도 없을 ‘신파극’을 재탕이라도 하겠다는 심산인가?
정치 경험 없는 대학 교수답게 첫 행보부터 잘못 짚었다. 이러니 ‘두 달짜리 혁신위가 무슨 혁신을 하겠느냐’는 핀잔을 듣는 것 아니겠나. 첫 출발부터 번지수가 틀렸다. 인요한 혁신위 출발은 광주가 아니라 ‘대전현충원’이 맞다. 콕 짚어 말하면 홍범도 장군 묘역이어야 한다.
철 지난 이념 논쟁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군사정권 시절 ‘반공주의’를 소환해 순국 80주기를 맞은 홍범도 장군과 독립 영웅을 욕보인 게 누구인가.
이념 전쟁에 불을 지핀 건, 극우 역사학자나 유튜버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이라며 반공주의 우선 정책을 언급한 건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 발언 이후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본격화됐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결과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집권 초반 지지율에는 “별 의미 없다”던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을 바꿨다.
두 달 전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더니, 얼마 전에는 “이념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삶”이라고 뒤집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은 가고,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는 안 간다고 한다. 대체 무엇이 대통령의 진심인지 모르겠는데, 인 위원장은 그런 대통령과 무슨 말을 거침없이 하겠다는 지 모르겠다.
인 위원장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 요인인 이념 논쟁부터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당 대표와 대통령에게 하겠다는 ‘거침없는 이야기’는 “홍 장군 흉상 이전 반대”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두 달짜리 혁신위’라도 진정성을 확보하지 않을까. 또 그래야 등 돌린 민심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6개월 뒤 총선을 준비할 것 아니겠나.
인요한 혁신위가 대전현충원 홍 장군 묘역 참배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3명 혁신위원 중 충청권은 달랑 1명(이소희 세종시의원) 끼워 넣어-여성 몫인지, 청년 몫인지, 지역 몫인지 구분도 안 되는-구색을 갖췄다는 지적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대전현충원에서 ‘2023 뉴 버전, 무릎 사과’를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