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병기 대전대 안보융합학과 교수
탄핵정국 속 정치적 양극화 심화, 원인과 대안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갈등은 늘 존재한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공포사회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나타나는 갈등은 민주주의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고 혐오를 조장하며,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극단적 수준까지 이른다.
<디트뉴스24>는 지난 12일 민병기 대전대 안보융합학과 교수(대전시민사회연구소장)를 만나 탄핵 정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의 격화(정치적 양극화)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고, 원인은 무엇지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차기 지도자가 양극단으로 치닫은 사회를 봉합하기 위해 제시해야 할 방향도 물었다.
"양극화, 과거부터 관측..강도 높아져"
민 교수는 “갈등이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심각하냐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지만, 과거와 비교해 사회갈등 강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여러 조사에서 남녀, 지역, 세대, 계급 등 다양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는 정치적 양극화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라고 말했다.
정치적 이념을 바탕에 둔 갈등의 격화 즉 ‘정치적 양극화’는 과거부터 관측됐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반공주의가 사회를 양분하는 요인으로 자리잡았고, 2000년대 들어 지역·성별·세대·계급 간 갈등이 중첩되며 몸집을 불렸다.
민 교수는 “우리나라가 정치적 양극화를 얘기하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투쟁 당시 사회갈등 정도가 올라갔고 사그라 들다가 박근혜 탄핵을 맞으면서 급격하게 상승한다”며 “여러 조사를 종합해보면 그때부터 현재까지 갈등 정도가 계속 오르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갈등 요소가 중첩되면서 현재 정치적 양극화 양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혐오 부추기는 감정적 양극화 심화가 문제"
정치적 양극화는 이데올로기적·감정적 양극화로 구분된다. 민 교수가 주목하는 부분은 ‘감정적 양극화의 심화’다. 이는 정책 차이보다는 상대 진영 정체성에 기반해 감정적 혐오를 부추기고 배척한다. 나아가 서부지법 폭동과 같은 폭력 행위, 극단주의적 사고로 이어진다.
민 교수는 “최근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넘어 감정적 대립까지 이르고 있다.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누군가를 죽여도 된다고 얘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령 최근 집회에선 ‘빨갱이를 죽여야 한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며 “과거 음모론에 의해 음지에서 유통됐지만, 현재 양지로 나와서 공개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주류 극단주의, 대통령 입 빌어 공식화"
감정적 양극화 심화 원인으로 ▲신자유주의 장기효과 ▲시민사회 분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혐오표현 확산 등을 꼽았다.
그는 “먼저 거시적으로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부의 분배가 골고루 이뤄지지 않는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쟁이 치열해져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살아남는 세상이 됐다”며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는 존재는 제거 대상이 되고, 이같은 인식이 정치영역으로 옮겨가 나의 이익을 해치는 정치세력은 거부 대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과거 보수 엘리트 정치인은 보수세력 사회적 이익을 대변했으나, 민주화 이후 잦은 정권교체를 경험하며 그러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있다. 때문에 보수진영 시민사회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주장하고자 하는 경향이 커졌다”며 “시민사회 양 진영의 공적이익이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해야 하는 정치권은 오히려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에서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행위자인 정당이 대통령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가 됐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 못하고, 정당간 합리적 타협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게 됐다”며 “특히 최근 주류질서에 등장하지 못했던 극단주의적 표현이 윤석열 대통령 입을 빌어서 공식화 되면서 막강한 힘을 얻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헌재가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양극화를 해소할 첫번째 단계라고 진단했다. 민 교수는 “혼란이 길어지면 그만큼 (양극화를 유발하는) 변수가 늘어난다.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의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헌재는 신중하지만 빠른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세력 보복에 권한 휘둘러선 안 돼..심판은 국민이"
탄핵이 인용될 경우 새로운 지도자는 갈등 봉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갈등을 조정할 주체는 정치이고, 대통령은 핵심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어떤 지도자든 ‘포용’과 ‘자제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 교수는 “우리사회 법과 질서, 관념, 관습 등 여러 가지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포용과 자제력을 전제로 한 통치행위와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며 “리더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정치 세력 보복과 응징을 위해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은 정부 자원, 정책결정 권한, 정부예산 배분 권한 등을 갖는다. 이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세력을 포용하는 힘이 된다"며 “가령 특정인이 헌법과 법 질서를 어겼다면 국민이 나서 법적 고발하거나 다음 선거를 통해 심판할 것이다. 응징과 보복은 리더의 역할이 아니다. 리더는 그런 인물을 다독여야 하며, 그것이 정치적 갈등과 양극화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개헌, 법 개정, 지방권력구조 개편 등 동반해야"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할 대안은 개헌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법 개정과 지방권력구조 개편, 사회문화적 노력 등이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 교수는 "1987년 체제 헌법은 한 세대를 지났고, 그만큼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책임총리제, 이원집정부제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 최대의 다수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헌법체계가 바뀔 때가 됐다고 본다"며 "이와 함께 정당법, 선거법 등 개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누구나 어디서든 정당을 만들 수 있게 해 정치적 다앙성을 확보해야 하며, 의석수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선거 비례성·대표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보완해야 한다"며 "또 중앙집권적 권력문화 개선을 위한 지방권력구조 개편과 민주시민교육 확대, 민주적 공동체 질서 회복 등 정치문화 차원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언론, 정당 역할론도 제시했다.
그는 "정부는 공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자원과 권한을 가진 강력한 힘을 가진 행위자다. 반면 시민사회는 다양한 이익이 충돌하는 공간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정부가 조정해야 한다"며 "언론 역시 정제되지 않은 극단주의적 발언을 대중에게 전달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당은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만 듣고 의회에서 싸우며, 문을 걸어 잠그는 폐쇄적인 운영을 해왔다"며 "정당은 대의민주주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사회에 등장하는 많은 주장과 충돌하는 이익을 걸러서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