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철의 좋은 정치] 이제 심판만 남았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중인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디트뉴스DB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중인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디트뉴스DB 

최근 약 4년 만에 국회에 복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오던 날, 나도 공직을 마치고 과천 법무부 청사를 떠났다. 2022년 5월이다. 나는 이후 6개월 백수로 지냈다. 고용노동부가 주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구직활동을 했다. 국회로 복귀하는 것보다 새로운 영역에서 일하고 싶었다. 매우 역동적인 법무법인에서 2년 남짓 전문위원으로 지내다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피청구인 윤석열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방청하는 일이었다. 탄핵심판은 매주 화요일, 목요일 계속됐다. 방청은 제한됐다. 나는 목요일에만 방청할 수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기자들도 추첨을 통해 방청권을 배정받는다고 했다. 경쟁이 생각보다 더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방청하는 것은 기록하는 일이다. 기록하는 것은 경중을 가리는 일이다. 짧은 시간 내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야 했다. 국회 소추위원인 의원께 방청 주요발언을 기록해 공유했다. 의원님도 방청하고 있었지만 다른 일정으로 그러지 못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하다보면 재판의 줄기 잡힌다. 도도히 흐르는 조류가 보인다. 나는 법조인도 아니고, 탄핵심판 경험이 전혀 없다. 완벽하진 않지만 방청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심판정 분위기나 흐름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이것도 못하면 방청하는 의미가 없다. 당장 다른 직업 알아봐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헌법재판소를 주목하고 있다. 오는 25일 최후변론을 끝으로 심판을 종결한다. 종결 이후 심판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노무현 대통령은 14일이 걸렸다. 이번에는 더 빠를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심판결과는 쉽게 예측 가능하다. 간명하게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피청구인을 파면할 것이다. 재판을 방청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지할 수 있는 결과이다.

대다수 언론은 이번 심판은 정형식, 김형두 재판관의 스테이지라고 전망했다. 두 사람은 소위 보수적인 법관으로 피청구인 쪽에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두 재판관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기우였다. 두 재판관은 국민적 상식과 수준 높은 법안(法眼)을 가지고 재판을 주도했다. 방청때마다 거의 두 재판관만 증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피청구인 파면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언을 이끌어냈다.

김형두 재판관은 지난 6일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테이저건과 공포탄을 논의한 것이 아니냐’고 질문했다. 김 재판관은 동시 어간, 다른 통화를 통해 이뤄진 병력과 경력 증원 요청 등 객관적 사실을 묶어 피청구인 윤석열의 “의원 끌어내라”는 직접적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나갔다.

이 대목이 개인적으로 이번 헌법재판소 증인신문 백미라고 생각한다.

정형식 재판관 또한 피청구인 대표적인 국헌문란, 국회침탈을 증명하는 증인인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 신문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김현태 707 특임단장이 계엄 당일 가지고 나간 실탄 1920발 행방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두 재판관의 절제된 신문을 빼더라도 피청구인을 파면해야할 이유는 탄핵심판 내내 심판정에서 증언됐고 증거로 채택됐다. 액면 그대로 파면 사유는 차고 넘친다. 청구인과 피청구인 대리인단의 변론 의지와 실력차이가 너무나 컸다.

피청구인 대리인단 쪽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이미 피청구인의 반헌법적 행위가 지난해 12월 3일 전후로 모든 국민에게 생중계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드러난 탄핵의 이유가 너무나 많다. 이어 규명된 반헌법적 국헌문란 행위의 증거들이 도처에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도 군·경 내부 통화를 비롯해 텔레그램 등 메신저 수발신 내역, 새로운 키맨(Key man)의 증언 등이 있을 것이다.

청구인 전력이 미국 태평양함대(7함대)라면 피청구인은 당나라 수군(水軍) 수준에 머물고 있다. 피청구인 대리인단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고 궤멸적 타격만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의 변론을 하기 급급했다.

그래서 자해적인 변론을 거듭해왔다. 중국의 선거개입을 얘기하다가 급기야 하이브리드전(Hybrid-戰)이라는 생경한 개념까지 등장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는 국회에서 본듯한 대정부질문과 다름없는 지루한 변론을 이어갔다. 암과 싸우고 있는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는 검찰 조사 당시 “섬망증상이 있지 않았냐”라는 반인륜적 변론까지 서슴지 않았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증언에 나선 조 청장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피청구인은 심판정에 매일 출석했다. 멀끔했다. 술을 줄이고 구속 이후 규칙적인 생활을 한 터였다. 솔직히 심판정에서 그는 내용은 형편 없었지만 변론은 수려했다. 달변이었다.

그는 어찌 됐든 국민 선택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거친 성정은 익히 알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옆에 없었다. 안타깝다는 감정이 스쳐갔다.

그는 때로는 “호수 위 달그림자를 쫓는 기분”이라며 선문답(禪問答) 같은 말을 늘어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도대체 내가 이 자리에서 왜 탄핵심판을 받고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탄핵공작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본인 판단으로 인해 직업을 잃거나 혹자는 영어의 몸이 된 증인들 앞에서 말이다. 그는 책임을 떠넘기고 파면을 면하기 위한 얕은 수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First In, Last Out.

서희철 전 법무부장관 비서관
서희철 전 법무부장관 비서관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와라. 불을 끌 때 소방관들이 가지는 불문율이다. 화마에 맞서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신성한 마음가짐이다. 심지어 도둑질을 할 때에도 리더는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고 한다.

피청구인은 심판 내내 비겁했다. 비상계엄 외피를 두른 내란으로 공동체를 공격하고 파괴했음에도 반성이 없다. 그로 인해 우리 공동체가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도 없다.

일단 오는 25일 최후변론은 남았다. <조선일보>는 매몰차게도 “尹, 최후변론 … 헌재 아닌 국민 상대 메시지 내야”라고 조언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파면은 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를 기본값으로 놓고 조기 대선에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모을 수 있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다운 코치다.

피청구인은 파면당할 것이다. 그는 물리력을 동원해 공동체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가 파면을 면한다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가 복귀하면 더 큰 외환(外患)을 불러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그는 헌법재판소 심판이 “호수 위 달그림자”를 쫓고 있다고 말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신문 내내 그가 지난해 12월 3일 전후로 벌인 명백한 반헌법적 행위를 쫓고 있었다. 지금까지 심판은 양측 대리인단과 증인의 시간이었지만 최후변론을 종결하면 그야말로 헌법재판소의 온전한 시간이 온다.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심판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