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생태 보전 딜레마 빠져선 안돼
빌려준 후손 생각하면 접근방식 자명
오염원 줄이고 생태복원 초점맞춰야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사업이 11일 기재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최근 분위기를 감지한 충남도와 서산시가 이날 기재부 발표와 함께 즉각 '지속적인 추진'을 천명했지만, 전면적인 수정 없이는 재추진이 불가능해 보인다.
6년 가까이 기재부 예비타당성조사와 타당성 재조사를 거치면서 사업성 확보를 위해 충남도는 사업비를 정부와 협의해 애초보다 절반 이하로 낮췄지만, 문턱은 다른 곳에 있었다.
도는 처음에 비용대비 편익(BC)이 안 나오자 사업비를 축소해 당초 0.3 대였던 편익을 안정권인 0.8대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문재인, 윤석열 정부 대통령 공약사업이었던 만큼 연초만 해도 예타 통과를 낙관했다.
하지만,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BC가 아닌 정책성과 지역균형, 기술성 종합평가인 에이에이치피(AHP)를 넘지 못한 것. 분과위원 중 민간위원들이 가로림만 해양생태계 보전과 활용 정책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들이 '보전과 활용 정책이 모호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관찰관과 보전관 등 몇 개의 건물을 짓고 산책로를 개발하겠다는 사업구상이 보전가치가 높은 생태공원 조성과 상충한다고 본 것이다.
사업비가 절반으로 깎이면서 사업내용이 부실해진 것이 원인은 아니다. 도는 또 사업에 대한 평가위원의 이해 부족에 원인을 돌리고 있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접근 방식이 문제다.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가로림만에 대한 이해 부족이 낳은 예견된 결과였다.
가로림만은 천연기념물 331호이자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 점박이물범 등 10종의 국가보호종이 사는 아주 순결한 곳으로 홍보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가로림만은 이미 곳곳이 멍들어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물살이 센데도 여러 곳에서 갯벌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넘쳐나던 박하지(돌게)와 낙지도 귀해졌다. 연세 지긋한 원주민들은 아예 자취를 감춘 것들도 수두룩하다고 얘기한다.
수십 년 전 이뤄진 간척사업과 현재진행형 개발 때문이다. 가로림만은 서쪽으로는 태안화력, 동쪽으로는 대산정유화학단지를 비롯한 여러 개의 대단위 산업단지와 접해 있다. 지금도 서산시와 도는 좀 더 잘살아 보겠다며 바닷가 근처에 산업단지를 계속 내주고 있다.
가로림만은 지금 큰 바다의 자정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사실은 생사의 갯골에서 흐르고 있다.
충남도와 서산시는 국가해양생태공원 예타 탈락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2025년까지 5524억 원을 들여 그와 유사한 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첫 사업은 환경 훼손이 많지 않은 탐방로 설치라지만, 기존 건축물 위주의 나머지 사업은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
가로림만은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보호구역이다. 누구나 이 소중한 곳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천억 원은 신음하고 있는 가로림만을 치료하는 데 써야 한다. 오염원을 줄이고 복원하는게 시급하다. 정부도 그런 관점으로 설득해야 한다.
이제는 충남도와 서산시, 태안군이 가로림만을 두고 생태보전과 개발이라는 딜레마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대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가로림만을 빌려준 후손을 생각하면 답은 명확하다.
점박이물범은 우리가 인공적으로 모래톱을 만들어준다고 찾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