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처벌에만 초점 맞춘 법령 체계의 문제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기업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산업단지 안전제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기업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산업단지 안전제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대재해법을 노동 존중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보고, 결코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산업현장의 사고가 저절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특히 전국 곳곳에 조성된 산업단지는 여전히 법과 제도의 구조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산업단지를 직접 걸어보면 하나의 거대한 공장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십, 수백 개의 중소·중견기업이 한 덩어리처럼 빼곡히 모여 있고, 그 아래에는 공동배관과 공동 전력 설비, 폐수처리장, 공용도로와 주차장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유해화학물질이 누출되면 피해는 단일 사업장을 넘어 인근 기업과 근로자, 나아가 주변 지역사회 전체로 번져 나갈 수밖에 없다.

202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제출한 자료를 보면, 산단공이 관리하는 67개 산업단지에서 최근 5년 6개월 동안 133건의 중대 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11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재산 피해만 1453억 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현행 법령 체계는 여전히 각 사업장과 개별 경영책임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동시설·공용구역을 누가 최종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규정이 모호하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은 관리기관의 업무로 ‘시설·환경 관리’와 ‘입주기업 지도’를 명시하고 있지만,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통합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분명히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경영책임자를 개별 기업 단위로 상정하고 있어, 산업단지 전체를 하나의 위험관리 단위로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하다. 이 구조에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쉬우며, 사전에 비용을 들여 위험을 줄이려는 경제적·제도적 동기(動機)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세사업장에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다. 산업단지에는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들 상당수는 전담 안전관리 인력도, 충분한 예산도, 시간을 내기도 여의치 못하다. 위험성 평가를 스스로 수행하고 설비를 정기 점검하며 법정 안전교육까지 챙기기에는 역량과 여건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현재의 법·제도는 이들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산단 단위 안전 지원 체계’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중대재해법의 취지를 산업현장에서 실제 성과로 이어가고자 한다면, 단순한 처벌 강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업단지 통합 안전관리 법제’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핵심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산업단지 관리기관을 공동시설·공용구역의 통합 안전관리 책임 주체로 법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상의 ‘경영책임자 등’ 범위에 관리기관의 장을 포함하고, 산업집적법에는 산업단지 단위의 통합 안전보건관리계획을 수립·시행할 법적 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기 셧다운, 공동배관 보수, 대규모 설비 교체처럼 여러 사업장과 협력업체가 동시에 얽히는 고위험 작업에 대해서는 ‘산단 단위 통합 작업 허가제’와 ‘통합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어느 한 회사의 안전관리만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유형의 사고들이기 때문이다. 통합 작업 허가제는 작업 전 위험 요소를 한 번에 점검하고, 참여 기업 간 공정과 일정, 비상대응계획을 조정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영세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공적 안전 지원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관리기관이 위험성 평가, 안전 점검, 안전보건교육, 컨설팅을 직접 수행하거나 공동 수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법에 명시하고, 국가 재정·지방비·산단공 자금을 결합한 ‘산단 통합 안전관리·컨설팅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개별 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문성과 비용을 산업단지 차원에서 함께 분담하자는 취지다.

유럽연합이 이른바 ‘세베소(Seveso) 지침’을 통해 고위험 산업단지를 하나의 위험관리 단위로 묶어 관리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산업단지 역시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제는 “각자도생 안전관리”에서 벗어나 “산단 전체를 하나로 묶는 안전 거버넌스”로의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중대재해법의 정신을 산업단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제대로 구현하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병찬 교수 국립한밭대 교수, 민주평통 대통령 자문위원
민병찬 교수 국립한밭대 교수, 민주평통 대통령 자문위원

중대재해는 몇몇 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생명과 안전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법의 사각지대를 그대로 둔 채 처벌 수위만 높여서는 ‘죽음의 산단’이라는 오명을 쉽게 지울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단 관리기관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하고, 영세사업장을 포괄하는 통합 안전관리 법제를 서둘러 마련하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와 국회가 이러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 주기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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