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유림공원 유성재즈&맥주페스타
유성은 재즈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재즈는 예측 불가능하고 완성도 어렵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삶’ 그 자체를 닮았다. 즉흥적으로 얽히고 쌓이는 낯선 음과 불협화음마저 수용해야 비로소 풍성해지는 음악, 대전 유성이 재즈를 닮아가고 있다.
해질녘 유림공원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마다 두 손에 맥주를 들고 돗자리 하나씩을 깔고 앉는다. 해가 지니 공원 잔디밭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 올해 4회째 열리는 유성재즈&맥주페스타(유재페) 개막날 풍경이다.
메인무대 건너편 서편광장에는 칵테일바가 차려졌다. 재즈를 배경음악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다. 메인 공연장 양 옆으로 마련된 하얀 커튼을 단 카바나존은 예약 오픈과 동시에 마감됐다.
목재친화도시 슬로건에 걸맞게 폐목재를 활용해 꾸민 축제장 인테리어는 소박하다. 소품 등도 썼던 것들을 다시 쓴다. 공연 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해 본질에 맞게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유성구가 3일 내내 유명 뮤지션을 섭외하고도 3억 원의 예산만으로 축제를 치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친환경 콘셉트는 점차 확장하고 있다. 다회용컵에 이어 다회용기 사용을 확대하고, 개인 텀블러를 지참하면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탄소중립 서약에 동참한 관람객들은 현장에서 바로 시원한 음료를 받을 수 있다.
여름은 그래도 맥주지
재즈와 맥주가 잘 어울리느냐고? 깊어가는 가을밤엔 와인이 제격이라면, 여름의 끝자락엔 그래도 시원한 맥주다. 멋있게 잘 차려입고, 우아하게 감상하는 재즈 공연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맥주는 참 잘 고른 콘셉트다.
발라드, 스윙, 블루스, 라틴, 보사노바. 재즈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듯이 유재페에서 접할 수 있는 수제맥주로 다양하다. 특히 올해는 참여 브루어리가 기존 10곳에서 14곳으로 늘었다. 대전, 경기, 강원, 경북 등지의 지역 브루어리가 저마다 특색 있는 맥주를 선보인다.
국제대회 수상 맥주부터 도시 이름 유성을 딴 수제맥주까지. 다양하게 준비된 맥주 라인업은 ‘재즈엔 와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깬다.
지역 양조장도 이 콘셉트가 반갑다. 지역에서 열리는 대규모 축제에서도 사실상 대기업에 밀려 설 자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 짧게나마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유재페는 가뭄의 단비같다.
재즈는 어려운 게 아니랍니다
아직 이틀이 더 남았다. 둘째날인 30일에는 쏘왓놀라밴드, 윤덕현 밴드와 서민아밴드가 무대에 오르고, 말로를 비롯해 박라온, 김민희, 조해인으로 구성된 국내 최초 여성 4인조 재즈 보컬 그룹 카리나 네뷸라가 관람객과 만난다.
재즈보컬리스트 말로는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은상 수상 이후 32년 만인 올해 첫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전북 군산의 작은 재즈클럽 ‘머디’에서 녹음한 공연 실황이다. 그 역시 2년 만에 유재페를 다시 찾는다.
마지막 날에는 올해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연주 음반 부문 후보로 올랐던 윤석철 트리오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여름 하면 생각나는 재즈 뮤지션. 지난해 발매한 정규앨범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는 타이틀 마저도 8월 말에 열리는 유재페를 똑 닮았다.
카이스트(KAIST) 출신 뮤지션 고상지는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 국민 악기 반도네온 연주자다. 축제 피날레 무대를 장식할 그의 열정적 음악은 고단했던 여름을 보내고 다시 힘을 내 가을을 마주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우연과 자유, 즉흥의 음악. 불확실성과 부족함마저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열린 도시. 유성이 재즈를 닮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제대로 알면 더 사랑하게 된다. 재즈와 맥주, 해질녘 유림공원에서 3일간 열리는 유재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