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핑] 그들은 아직 처벌받지 않았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한동훈 후보가 폭로한 ‘공소 취소 청탁 의혹’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습니다. 한동훈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향해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하신 적 있으시죠?”라고 폭로전을 펼치면서 당내 반발이 이어졌는데요.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여럿이 한동훈 후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결국 한 후보가 “신중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뜩이나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후보가 쏟아지는 당내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한동훈의 폭로와 나경원의 맞대응, 선출직들의 한동훈 공격은 모두 여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벌어진 당내 분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관점에서 ‘한동훈과 윤석열의 갈등’으로 바라보면, 나경원과 당내 선출직들의 한동훈 공격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줄서기’로 해석할 수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사법 정의’ 관점으로 보면, 피고인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한동훈과 나경원의 설전을 보면, 실제로 공소 취소 청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 후보가 청탁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더군요. “검찰의 기소 자체가 반헌법적”이라고 반박할 따름입니다.
피고인이 검찰 기소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여당 유력 정치인이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이 포함돼 기소된 사건을 무마해 달라고 부탁한 사건을 가볍게 볼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한동훈을 공격하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내 문제에 대해 선출직 공직자가 메시지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 상당수가 이른바 ‘패스트트랙 사건’의 피고인 신분이라는데 있습니다.
독자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 2019년 4월로 되돌아가 볼까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와 선거제도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 절차에 따라 처리하려 하자, 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법안 접수를 막거나 동료 의원을 감금하고, 회의장을 점거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한 사건이 벌여졌습니다.
검찰이 시간을 끌며 수사한 끝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13명, 보좌진 2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의원 10명과 보좌진 1명을 약식 기소하기에 이릅니다. 법원은 약식 기소한 11명을 정식 재판에 넘기고 총 27명에 대한 공판을 진행해 왔습니다.
기소된 27명의 면면을 법원 사건기록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전 자유한국당 의원 23명의 명단이 올라 있더군요.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나경원·강효상·김명연·김정재·민경욱·송언석·윤한홍·이만희·이은재·정갑윤·정양석·정용기·정태옥·곽상도·김선동·김성태·박성중·윤상직·이장우·이철규·김태흠·장제원·홍철호 전 의원이 그들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나경원에 대한 동지애를 드러내며 한동훈 공격에 동참했습니다. 한동훈 공격을 ‘단순한 정치공세’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했던 2020년 1월, 검찰은 2019년 4월 25일부터 이틀 동안 국회 의안과 법안접수 방해, 사개특위 회의 방해에 나선 23명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공용서류은닉, 국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일부 과격한 행동을 한 의원들에게는 공동감금 및 공동퇴거불응 등 폭처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지요.
서울남부지법에서 2020년 2월 17일 시작된 공판은 지난 7월 15일까지 30여회 진행됐습니다. 피고인들은 여러 사유를 들어 상당수 공판에 참석하지 않았구요. 1심 재판부는 4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법원 앞 횡단보도에 누군가 걸어놓은 ‘지연된 재판과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현수막 문구가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익활동으로 유명한 하승수 변호사가 지난 2022년 ‘패스트트랙 사건’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며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글을 인용하며 오늘의 이슈브리핑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35번이나 외쳤던 자유는 ‘기득권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범죄를 저지를 자유’이고,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은 피고인이어도 거리를 활보하고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도 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