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지난 2021년 6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는 무려 10만 1천여 명의 광범위한 시민들이 참여한 설문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개인과 사회 공동의 행복추구(20.9%)’를 1순위로 뽑았다. 그리고 강화되어야 할 교육 영역으로 ‘인성교육(36.3%)’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우리 국회는 2015년에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한 바 있다. 이 법 ‘제2조’에 따르면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또 ‘제5조’에서는 인성교육을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의 참여와 연대로 다양한 사회적 기반을 활용하여 전국적으로 실시되어야 할 교육이라고 말한다. 

이 정도로 우리 사회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인성교육’인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필자는 20년에 가까운 학창 시절과 30여년의 교직생활에서 정작 학교에서 인성교육이라고 할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동안 우리는 인성교육의 중요성만 강조했지, 정작 어떤 내용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룰지 교육적 합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입시경쟁에 치여 인성교육에 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실 다원화하고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의 인성을 이끌어가겠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온갖 매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전달되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도덕적 의식을 끌어올린다는 것 자체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학교가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과연 어떤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좋을까? 

과거 우리는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체면 의식’은 권위적인 봉건국가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었다. 가문과 가족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충과 효를 내세우며 사적인 이기심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이 치열한 사회로 변모하면서 실속이 중요하고 돈과 출세를 위해서 ‘체면’을 내버린 지 오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고의 가치를 무엇보다 ‘민주주의’로 본다면 ‘존중과 배려’라는 덕목은 필수적이다. 타인의 권리가 내 권리와 마찬가지로 소중하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다. ‘존중과 배려’의 덕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인권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교육을 통해 우리 주변의 여러 잘못된 차별의식을 깨닫고 이를 타파하도록 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잘못된 의식이 결국 비행이나 폭력을 낳는 것이다. 학교폭력도 자신보다 약하거나 다른 점이 있다고 느낄 때, 그것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능력, 성별, 외모, 장애 등 여러 차이를 이유로 혐오하고 배제하는 차별을 없애려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차이를 배려하는 인권의식을 길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의 교육과정에 ‘민주시민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 각종 행사, 방과후활동 등에서 체험이나 실천 위주의 ‘인권교육’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우리의 아이들이 기성세대에게 존중받고 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학생인권조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식을 가지면 교실에서 학습권을 침해하는 상황도 사라질 것이다. 학교폭력이나 각종 청소년 비행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해변에서 모난 돌들은 서로서로 부딪치고 깎이면서 동글동글 몽돌이 된다. 학교에서는 개인이 갖고 있는 이기심을 주저하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학교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다. 

“요즘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어.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어도 아무 대책이 없어.”
“교사들은 도대체 무얼하나. 아이들이 너무 예의가 없고 이기적이야.”
“학교가 되려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봐. 학교에서 폭력성을 배우는 것 같아.”

청소년들의 비행이 언론을 장식할 때마다, 또는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아이들의 일탈 행위에 어른들은 학교를 향해 혀를 찬다. 이렇게 걱정하는 기성세대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은 지금 우리 아이들의 인격적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충청남도의회는 12월 15일, 본회의를 열어 박정식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재석의원 44명에 찬성 31명, 반대 13명으로 가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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