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IN충청-(20) 500년 전통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풍어제, 한계와의 거친 투쟁 Vs 신명을 추구한 모순적 역설
곳곳에 활기가 넘친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축제부터 오래된 역사와 도시브랜드를 담은 축제까지, 대전·세종·충남의 다양한 축제 이야기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기지시줄다리기’는 충남 당진시를 대표하는 민속축제로 500년 전통을 자랑한다.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오랜 농경의식이었지만 규모가 범상치 않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한다. 그런 관계로 1982년 6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됐고,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줄다리기는 일종의 편싸움 놀이로 길쌈이라고도 한다. 당진은 바다와 육지를 아울러 발달한 지역이다. 따라서 줄다리기도 마을을 육지와 바다 두 편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헌데 이 싸움에선 반드시 바다가 이겨야 한다. 농경의식에 따른 풍년을 기원하기 때문에 여성을 상징하는 바다 쪽 편을 드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풍년, 여성, 다산이라는 등식을 세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옛날에는 그러한 해석으로 이해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음력 3월초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 다음 행해졌다. 전설에 의하면 당진 기지시리는 풍수적으로 옥녀가 베를 짜는 형국이어서 베를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고 그 모양을 본 따 줄다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 조선시대 초 아산만에서 해일이 일어나 한진일대가 바다에 잠기고 전염병과 호환이 이어지는 등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마침 이 지역을 지나던 도인이 매 윤년마다 줄을 만들어 당기고 제사를 지내면 평안할 것이라 하여 그 때부터 줄다리기가 이어졌다고 한다.
당진은 지네지형 지기 눌러 풍년기원
지역이 지네 지형이라 지네를 닮은 줄을 당겨 지네들이 힘을 못 쓰게 한 뒤 지기를 누른다는 전설도 있다. 여기서 유래해 당진은 닭이고 기지시는 지네로 “당진장은 흥하고 기지시장은 망한다”와 같은 전설도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낙방한 선비가 잠이 들었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지네와 싸우다 죽어 땅에 떨어지고, 선녀가 나타나 이곳에서 줄을 당기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에 제사와 줄다리기를 시작했다는 설화도 구전되고 있다.
실제 ‘기지시’라는 명칭 중 ‘기’는 한자로 틀기(機), 못을 못지(池)로 훈차하고 시를 시장 시(市)로 음차해서 생겼는데, 풀이하면 ‘닺줄을 만들던 나무틀을 썩지않게 뻘(못)에 침목해 보관한 뒤 이를 시장을 통해 활성화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어업(나무)과 농업(줄)의 시장을 통한 발현'을 기지시줄다리기가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는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식이기 때문에 농촌사회의 협동의식과 민족생활의 변화를 머금고 있다.
기지시줄다리기의 특성은 농업과 시장이 결부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농업중심사회에서 시장은 도시의 중심이자 교역의 장소였다. 즉, 기지시줄다리기는 농업을 중심으로 어업, 상업을 아우른 도시문화 시장경제를 상징하는 당진만의 독특한 의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진시 문화관광과 A학예 주무관에 따르면 예로부터 농업은 줄을 받아 신을 내리는 ‘금줄문화’와 연관이 있는데 물을 관장하는 용과 뱀 신앙이 이를 뒷받침 한다. 당진의 경우 지네의 지형이라 지기(地氣)를 누를 필요가 있었다.
그는 “500년 전 당진의 한진 앞바다에 커다란 해일이 일었고, 300년 전 금난전권의 폐지와 함께 열 두개의 장이 서며 농업과 어업이 어우러진 현물 시장문화가 발달했을 것”이라고 개연적 추측을 했다.
노동으로부터의 일탈···카타르시스
바다와 육지가 시장을 통해 어우러진 복합공동체문화는 신명나는 사당패를 부르며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의 일탈을 즐기게 됐다. 노동으로부터의 일탈문화가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로 이어졌으며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는 사실 ‘일탈’을 즐기는 문화라는 것이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세 개의 중줄을 ‘사치미’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마치 머리를 따는 것처럼 큰 줄인 암줄과 숫줄을 만드는 독특한 줄 꼬기 방식이다. 굴기나 길이도 어마어마해 수백에서 천 여 명의 사람들이 몇 아름(지름 1m 이상), 길이 100미터 가량(100m 새끼줄 21가닥, 70가닥씩 중줄 3가닥)의 줄(암줄과 숫줄)을 메고 1.5km를 걸어 줄다리기장으로 이동한다.
줄다리기는 당제, 용왕제, 시장기원제 등을 마치고 진행된다. 미리 만들어둔 암줄(수하)과 숫줄(수상)로 나누어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줄을 잡는다. 줄다리기는 3판2선승제로 나누어 진행된다. 숫줄이 이기면 나라가 평안하고 암줄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전하는데, 과거엔 바다 쪽편과 육지 쪽편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바다 쪽편은 여성을 상징하는 암줄이어서 당시 사람들은 수하가 이겨 풍년이 들기를 더 바랐다. 따라서 기지시줄다리기에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정서보다는 민안, 즉 나라의 평안보다는 마을의 풍년을 더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풍어제, 저절한 삶의 현장···경쟁적 신명 통해 일탈
당진의 안섬과 한진 풍어제에는 원양어업에서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당진의 풍어제는 기지시줄다리기가 추구하는 일탈문화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진 풍어제에는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기지시줄다리기(줄을 만들기 전) 지내는 용왕제는 풍어제와 맥을 같이한다. 사람들은 용왕제를 통해 바다에서의 안녕을 기원했고, 바다에서의 평안을 육지에서 시장을 통해 발현시키려 했다.
당진의 풍어제가 기지시줄다리기와 함께 보존적 전승가치가 필요한 이유는 역시 연동성이다. 기지시줄다리기가 그렇듯 풍어제 역시 육지와 바다를 연계한 복합공동체 문화이며, 생명을 담보로 한 한계와의 거친 투쟁에서 신명을 통해 일탈을 추구하는 모순적 역설이 가미돼 있기 때문이다.
안섬 당제는 격년으로 대제와 소제를 번갈아 가며 지내며, 한진리 당제는 윤년을 제외한 평년에 제사를 지낸다. 풍어제는 당집에 당주와 선주들이 올라가 마을과 개인배의 축원, 소지를 올리고, 자신의 배에 배고사를 지내는 형태로 진행된다. 풍어제는 준비 과정을 통해 이웃과 화합하며 제사 과정을 통해 어업 생산 활동에 안심하고 임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해안가의 많은 마을에서 풍어제를 지냈으나 6·25 전쟁을 전후해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송악읍의 안섬과 한진리에서만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