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극단주의와 정치권에 훼손된 가치
극우 성향 기독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지난 22일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개최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수많은 태극기가 펄럭였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과 대전시장, 구청장, 시의회 의장이 단상에 오르고, 극우인사가 발언을 쏟아낼 때마다 태극기 물결이 일었다.
태극기가 보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6~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던 ‘태극기 부대’에서 시작됐다. 이후 태극기는 8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다시 등장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수’가 아닌 ‘극우’의 탈을 썼다는 점이다.
보수와 극우는 구분된다. 보수는 사회체제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으로, 법과 질서, 전통과 관습을 중시한다. 반면 극우와 같은 극단주의는 이념이나 사상이라고 볼 수 없다. 극단주의자는 민주주의와 평등, 법치 등 사회가 합의한 보편적 가치를 부정한다. 위법·폭력적 수단으로 자신이 원하는 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관측되는 세이브코리아나 전광훈 같은 세력이 그러하다. 이들은 헌정질서를 파괴하려한 윤석열의 내란 행위를 ‘계몽’이라 옹호한다. 그를 구하는 것이 곧 애국의 길이라 호소한다. 그러기 위해 서부지법 폭동 같은 폭력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 여권 인사도 줄줄이 가세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정체성과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1882년 용을 그려 넣은 청나라 황제기를 모델로 삼으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태극·4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다.
일제강점기에선 태극기 사용이 전면 금지됐지만, 조국 독립을 외치는 현장엔 어김없이 나타났다. 윤봉길·이봉창 의사는 거사(擧事) 전날 태극기 앞에서 결연한 의지를 다졌고, 안중근 의사는 붉은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기미년 3·1 운동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짖던 민중의 손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민주공화국을 요구하던 1960년 4·19 혁명, 신군부 정권찬탈과 계엄에 맞섰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쳤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도 태극기는 늘 함께했다.
그러나 현재 태극기기 반(反)민주, 혐오의 상징이 된 현실이 안타깝다. 어쩌다 내란 우두머리를 엄호하는 극우 집회 상징이 됐는지 개탄스럽다.
이제라도 죄가 없는 태극기를 놓아 주는게 어떨까. 태극기를 극우와 분열이 아닌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상징으로 후대에 물려줄 책임은 정치권과 기성세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