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우리가 홍범도다’ 외침에 깃든 대전의 역사성

'홍범도장군로' 폐지와 관련해 지난 주말 설전을 벌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이장우 대전시장. 자료사진.
'홍범도장군로' 폐지와 관련해 지난 주말 설전을 벌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이장우 대전시장. 자료사진.

[한지혜 기자] ‘홍범도장군로 폐지 가능성’을 시사한 이장우 대전시장 발언이 여야 간 원색적인 설전으로까지 번졌다. 정치권이 망둥어와 꼴뚜기, 송사리 등에 빗대 서로를 비판하는 동안 대전에 모인 민중들은 “우리가 곧 홍범도”라는 준엄한 은유로 결집된 목소리를 냈다.

지난 10일, 늦여름 무더위에도 수백 명 인파가 현충원역 앞에 모였다. 인근 지역 대학생부터 3대(代)에 걸친 가족 등 일반 시민을 포함해 전국 각지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약 4km를 걸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을 찾았다.

이날 오전 홍 장군 묘역을 방문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장우 시장을 겨냥해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더니 이 시장이 꼴뚜기였다”며 “정권에 과잉충성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행동이 마치 친일단체 일진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홍범도 장군의 독립투쟁, 독립운동업적은 윤석열 정부도 부정하지 않고 있는데, 대전시장이 장군의 이름을 딴 거리를 지우겠다는 정신 나간 발언을 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 시장이 지난 7일 육사 내 홍 장군 흉상 이전에 찬성 입장을 밝히며 “공과(功過)를 재조명해 과가 많다면 홍범도장군로도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데 따른 비판으로 들린다.

이 시장도 즉각 대응했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부패한 송사리 한 마리가 대전천을 더럽히고 가는구나”라며 “썩고 부패한 송사리가 갈 곳은 감옥뿐”이라고 노골적으로. ‘민주당 돈봉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송 전 대표의 상황을 빗댄 비유로 읽힌다.

같은 시간, 걷기대회에 모인 이들은 ‘우리가 홍범도다’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현충원을 향해 걸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홍 장군이 돼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소셜미디어에선 같은 슬로건으로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 백지화를 위한 한민족 100만인 서명운동'도 진행 중이다. 민중의 은유는 얄팍한 정치권 비유와는 차원이 다른 엄중함을 품고 있는 셈이다.

광복회 유성대덕연합지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우 홍범도기념사업회 대전모임 공동대표는 걷기대회에서 “홍 장군에게는 가족도, 후손도 없다”며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대전현충원에 모신 지 이제 2년이 지났고, 이제 장군의 고향은 대전”이라고 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항일의병인 '을미의병' 시초는 지금의 대전 유성지역이 중심이 된 ‘유성의병’이었다. 같은 시간, 홍범도 장군이 최초로 항일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나선 시기도 바로 이 때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운 최초 대규모 항일의병. 이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독립군이 된 홍범도 장군의 삶. 같은 역사성을 공유하고 있는 유성구가 이 논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 장군 유해를 모실 자격이 있는 이 도시를 흔드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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