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예순다섯번째 이야기] 여야 정치권에 본때 보일 때

지난 2018년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충청향우회 정기총회 겸신년교례회. 자료사진.
지난 2018년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충청향우회 정기총회 겸신년교례회. 자료사진.

충청향우회 총재를 지낸 고(故) 김용래 전 총재는 생전 ‘엄청도(엄청난 충청도) 전도사’로 불렸다. 그는 타계 열흘 전인 2009년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충청향우회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범 충청인이 750만 명이다. 충청도는 더 이상 약소도(弱小道)가 아니라 엄청도”라고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겼다. 

충남 청양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엄청도의 힘’을 강조한 정치인 중 하나다. 그는 지난 2012년 8월, 18대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디트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충청도가 정권 교체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 ‘멍청도’가 아닌 ‘엄청도’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총재와 이 전 대표가 충청도를 ‘엄청도’로 언급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사이 충청권 인구는 호남권을 넘어 ‘영충호(영남-충청-호남) 시대’라는 말이 생겼다. 인구는 늘었을지 몰라도, 정치만큼은 잔뜩 쪼그라든 느낌이다. 

영호남이 번갈아 잡아 본 정권을 한 번도 잡지 못해서일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스스로 ‘충청도의 아들’이라고 했다. 부친 고향이 충청도라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였던 2021년 8월 30일 국민의힘 충남도당을 방문했다. 그는 회견 전 모두발언에서 “뿌리 없는 줄기와 열매가 없다”며 ‘충청도 뿌리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충청대망론은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는 “국민통합론”이라고 답했다.

그가 대통령과 당선과 함께 정권 교체를 이루자 충청도는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장관도 여럿 나오고, 집권 여당 요직에 지역 인물을 천거하고 중용될 줄 알았다. 지난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충청 출신은 당 지도부에 진입하지 못했다. 

새 지도부 구성 이후 발표한 핵심 당직자 명단에도 충청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정권이 바뀌거나 여야 지도부 교체기에는 ‘지역 안배’를 고려한 인선 발표가 관례였다. 

민주당이라고 다를까. 문재인 정부 시절 충청도는 ‘소외론’을 달고 살았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그렇게 표를 몰아줬어도 ‘없는 것’만 천지였다. 식견과 실력을 갖춘 인물은 많았지만 발탁되지 못했다.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도 충청 출신이 나설 거란 얘기는 안 들린다.

상황이 이럴진대 누가 총선을 1년 앞두고 대전·충남 혁신도시에 알짜배기 공공기관을 준다고 약속할까. 육사 충남 이전도 마찬가지다. 영충호나 영호충 앞에 ‘서울’이 먼저이고, 수도권 표가 더 많은데. 

게다가 여야 모두 ‘윤석열 지키기’ ‘이재명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으니 어느 지역 현안 하나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중진급 광역단체장 역할론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고도 여야는 내년 총선에서 충청도에 다시 손 벌릴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면 뭐든 다 해줄 것처럼. 충청도에 필요한 건, 선거 때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힘이 아니다. ‘엄청도의 힘’으로 본때를 보일 때가 왔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