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을 가보니
[류재민 기자] 2022년 10월 31일, 오전 11시 15분. 서울시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을 찾았다. 역 출구 앞에는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 만들어졌다.
내외국인 추모객들은 줄 서 차례를 기다렸고,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추모 공간에는 추모객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과 각종 물품이 쌓여 있었고, 추모글을 적은 메모지도 보였다.
백발의 노부부는 추모를 마친 뒤 취재진 앞에 섰다. 어르신은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당했다. 영혼을 달래주러 왔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국가와 나이 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 있던 부인은 “손주 같은 아이들이 불쌍하게 갔다. 아프지 않고 잘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송모(27) 씨는 이번 사고로 대학 동기를 잃었다. 송 씨는 “지방에서 올라와 정말 열심히 살던 친구였다.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사고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며 울먹였다.
그녀는 “누구한테도 일어날 수 있던 사고였다. 내 일이 아니라고 욕 하거나, 안 좋게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추모 공간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곳. 뉴스에서 보던 ‘좁은 골목길’이 보였다. 폴리스라인이 둘러쳐 있고, 그 앞에 경찰들이 일반인 진입을 막았다. 기자 신분증을 내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치과와 호텔 건물 사이, 폭 4미터에 성인 대여섯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위쪽으로 경사가 지어졌는데, 길이는 70여 미터에 불과했다.
36시간 전 수백 명이 옴짝달싹 못한 채 뒤엉켜 생사를 다퉜던 곳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쓰레기만 뒹굴고 있었다.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의 사내 둘은 “정부가 못나서,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고 수군거렸다.
정오 즈음, 사고 현장 맞은편 2층 식당을 찾았다.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식당 주인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들을 참이었다. 안에는 이미 여럿의 기자들이 주인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있었고, 주인은 피곤해 보였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참사를 애도하는 차원에서 국민 애도 기간인 내달 5일까지 휴점한다. 그렇다 보니 근처에 문을 연 국밥집에만 취재진이 몰린 것이다. 주인은 “기자들 밥이라도 해 주려고 문을 열었다. 이미 뉴스에 다 나왔는데, 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해야 하니까 무척 힘들다”고 토로했다.
옆자리에 20대로 보이는 여성 둘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망설임 끝에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밥 먹으러 왔는데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괜히 미안했다.
식당을 나와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합동분향소가 있는 녹사평역으로 향했다. 분향소는 녹사평역 3번 출구에서 약 1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분향소를 설치한 지 얼마 안 지났고, 평일 낮 시간대라 조문객보다 취재진이 더 많았다. 줄을 서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10월의 마지막 날,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렀다.
분향소에 들어가 국화 한 송이를 받아들고 잠시 묵념하며 희생자를 애도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누군가의 아들딸이었고, 손자였고, 친구였고, 배우자였을 사람들. 그날 밤, 그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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