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열한번째 이야기]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야 할 것

고(故) 손평오 국민의당 충남 논산·계룡·금산 선대위원장 빈소 앞. 영정사진 촬영은 유족이 원치 않아 복도 입구 취재 구역에서 촬영했다. 류재민 기자.
고(故) 손평오 국민의당 충남 논산·계룡·금산 선대위원장 빈소 앞. 빈소 내부는 유족이 원치 않아 복도 입구 취재 구역에서 촬영했다. 류재민 기자.

국민의당 유세차량 사고 사흘 뒤 천안 단국대병원에 차려진 빈소에 조문 갔었다. 조문소로 가는 길, 근조기와 조화가 좁은 복도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치인들 이름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길게 늘어섰다. 피도 눈물도 없는 선거판이라지만, 정치의 영역을 떠나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예의’ 였으리라. 

고인은 말끔히 단장한 영정사진 속에서 말이 없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유가족의 얼굴에는 슬픔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안철수 후보는 한쪽에서 조문객을 맞았고, 참모진은 다른 한쪽에서 발인 준비에 여념 없었다. 20대 대선 공식선거운동 첫날(15일) 충남 천안의 유세차량에서 숨진 고(故) 손평오(64) 논산·계룡·금산 선대위원장 빈소 안 풍경이었다.

듣기에 손 위원장은 ‘열성 당원’이었다. 당사도 없고, 조직도 넉넉지 않은 충남에서 ‘가족 같은 당원들’과 의기투합했다. 황산벌 ‘계백의 결사대’ 같은 비장함으로 안철수를 위해 깃발을 들었다. 

아침밥은 먹고 나왔을까. 대전발(發) 첫차를 타러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마지막이었을 부인과 아들딸. 빈소 식탁에 마주 앉은 선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유가족은 “안 후보의 선거운동에 지장을 줘서 미안하다”고 오히려 걱정했더란다. 

집에 돌아와 핸드폰과 TV를 통해 본 뉴스에는 사고 분석과 현실 진단, 예방책을 제시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안전 불감증, 불법 차량 개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검토까지 다양했다. 

사고가 터졌으니 그렇지 “몰랐다”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선거 때마다 각 당은 유세차를 돌렸고, 이번에도 돌리고 있다. 거대 양당은 300여 대씩(더불어민주당 306대, 국민의힘 299대) 돌리는데, 거의 불법 개조 차량이라고 한다. 

선거운동은 뒤가 없다. 앞만 보고 간다. 황망한 일이 벌어져야 가던 길을 멈춘다. 그것도 잠시, 다음 선거 때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온다. 선거사무원은 하루 12시간 일한다. 후보 이름을 목청껏 외치고, 손 흔들며, 노래하고 춤춘다. 죽어라 뛰고 일해도 일당은 10년 넘게 ‘열정페이 7만원’. 

이래놓고 후보들은-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선거 때마다 시대를 바꾸고, 세대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겠다고 한다. 자신의 당선을 위해 뛰는 사람은 챙길 줄 모르면서 ‘사람이 먼저’라고 공약한다. ‘코로나 극복’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지만, 어디 사람 목숨만큼 할까. 이름도, 빛도 없는 선거사무원이라도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국민이 다치거나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에 바란다. 누가 되더라도,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슬픔이 들어서지 못하는 일부터 하시라. 장례는 오늘(18일) 정당장(葬)으로 엄수됐다. 삼가 손평오 위원장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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