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월급에 힘든 노동 파김치

 툭하면 욕설·폭행 모멸감

 외국인 노동자 삶과 애환(상)


지난 8월 16일, 대전 3·4공단에 위치한 D산업.
중국 한족 진모양(22)은 경리 담당 여직원에게 황당한 일을 당했다.
진양이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물을 떠서 기숙사로 오는 도중이었다. 여직원이 ″네가 반찬을 다 가져가서 우리가 먹을 것이 없다″는 말끝에 진양을 밀쳐 넘어뜨렸다. 반찬을 가져왔을 리도 만무하고 설사 그렇게 했더라도 내국인이라면 시비를 걸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말이다. 이에 화가 난 진양이 물을 뿌리자 여직원은 주변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사발로 머리를 내려쳐 피가 나면서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여직원 남편이 공장을 찾아와 행패를 부려 외국인 근로자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진양은 대전북부경찰서에 여직원과 남편, 그리고 회사 대표 등 3명에 대해 폭행 등의 이유로 고소장을 제출해 놓고 있다.

 체불 임금 탄원서 갖고 다녀


파키스탄인 말리크씨(31).
그는 대전공단에 근무하고 있지만 주머니 속에 늘 갖고 다니는 것이 있다.
바로 밀린 월급을 지급해 달라는 영문으로 된 탄원서이다.
지금 직장에 오기 전에 나무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현재 근무처로 옮기기 전에 약 보름 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호소하고 있다.
말리크씨는 ″일을 시키고 왜 돈을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매달렸다.

대전·충남에 근무하는 외국인은 줄잡아 12,000명.
이중 중소기업 대전·충남도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산업연수생으로 올라있는 인원은 대전 261명, 충남 2,433명 등 모두 2,694명이다. 이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9,000명은 불법 체류자이다.
불법체류 원인은 말리크씨와 진양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아직은 산업 연수생 신분이지만 연수기간이 끝날 때쯤이면 직장을 이탈하여 불법 체류자군에 합류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송출회사 지불비용 너무 비싸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유는 대개 4가지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입국하는 과정에 있다. 한국에 오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송출회사를 통해 들어올 경우 중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서는 대략 500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본국에서 약 5-10년간 벌어야 하는 엄청난 돈이다.
거액을 주고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짧게는 2년, 길어야 3년이다.
1년 동안 기를 쓰고 벌어야 송출회사 대금 갚기에 빠듯하고 나머지 1년을 열심히 일해 겨우 돈을 좀 만질 만 하면 연수기간이 끝나 버린다. 한국과 관련한 상식 테스트를 거쳐 1년 연장이 가능하지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
입국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인 만큼 2년이 지나면 서서히 도망갈 기회만 엿보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 이기철 전도사(32)는 ″송출회사에 내는 비용이 비싸다는 것이 산업 연수생 이탈의 가장 큰 이유″라며 ″이것이 개선되지 않는 한 불법 체류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습 체불·폭행 불법 체류 조장

두 번 째 이유는 말리크씨 처럼 상습적인 임금체불이다.
26일 대화동에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 칼비씨(39·가명) 역시 파주 공장에서 두달치 급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이사가 준 명함 전화 번호로 가끔 연락을 취하지만 ′기다려달라′는 대답 밖에 들은 것이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칼비씨의 체불 임금은 약 140만원이었다.
″체불임금 때문에 이탈하는 동료가 상당수입니다. 나름대로 계산을 하고 있는데 급료가 나오지 않으면 월급을 더 많이 주는 불법 체류 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칼비씨는 이날 대전공단 모회사에 있던 인도네시아 근로자 3명이 지난 주 도망갔다는 소식을 동료들에게 전했다.

사내 폭행도 이탈을 조장하고 있다.
중국인 진지영양같이 아직 산업 연수 기간이 많이 남은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만 폭행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거기에다가 모멸감을 주는 욕설 등이 겹치는 날이면 도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한국사람들 5명이 있으면 1명은 나쁜 사람입니다. ′이리 와서 이런 일을 이렇게 하라′고 하면 좋은 데 ′야! 이 새끼야. 이리 와서 이거 해 ××놈아′하는 건 정말 싫습니다″
인도네시아 근로자는 이 얘기를 매우 자연스럽게 했다.
빈들교회 김규복 목사는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 문화가 욕설을 많이 사용하고 무식하면서 폭력적입니다. 과거에 군대에서 구타가 심하듯이 사회도 그렇습니다. 외국인들이 볼 때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지요. 동남아를 다녀보면 폭력적이고 욕하는 문화가 없습니다. 고문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게 일본의 무단정치의 잔재지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회에 깔려있는 약자를 짓밟고 등쳐먹은 문화가 현재의 약자인 외국인 근로자에게 나타나게 된 겁니다″

마지막으로 사업장 일이 너무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노동의 강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말이다. 돈벌러 온 근로자가 노동강도를 탓할 수 있겠느냐는 강변도 있지만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시킬 때가 많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청주공단에서 외국인과 함께 일을 했다는 이종균씨(29. 대전시 중구 문화동)의 말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들어오면 내국인들은 아예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감독자가 있을 때는 마지못해 하는 흉내라도 내지만 가고 나면 손을 놓아버리지요. 일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일을 반대로 가르쳐 주어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예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대우 가장 원해

최근 대전공단네 모 타월업체에서 일어난 일이다.
카자흐스탄 근로자 3명이 이 회사에 와서 일을 했다. 하지만 조금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가장 힘드는 자리에다 거의 휴식 없이 일을 시키니 매일 술로써 힘든 일을 이겨내고 있었다. 이 회사는 힘든 일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배려는커녕 오히려 동료들보다 임금을 20만원이나 적은 월 40만원을 지급,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도망을 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인간적인 대우다.
한 인간으로써 그 개체가 인정만 된다면 구타나 욕설, 불평등한 대우, 그리고 체불 등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이제 좋든 싫든 외국인 근로자도 우리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이다. 인권을 짓밟고 폭력을 행사하고 무시한다면 과거 우리가 침략국에게 당한 피해를 되풀이하는 결과가 된다. 불확실한 신분으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가진 자로서 보다 따듯한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이들도 문제집단이 아닌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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